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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시

사과의 감정 / 조정인

 

 

 

       사과의 감정

 

                                조정인

 

 

 

  젖은 얼굴을 반씩 나누어가졌으면 하던 때가 있었다

 

  사과가 사무친다 칼날에 대한 사과의 감정이 그렇다, 씨방 쪽으로

  칼끝을 숙여 천천히 칼날을 앉혔다 씨앗의 방문 앞에서 잠시 멈췄다

  사과조각 배열마저 당신이 구심이라니! 사과는 물기가 많다

 

  괜찮니? 오른손이 왼손을 더듬으며 물어왔다 괜찮아……

  슬픔은 슬픔으로만 어루만져졌다 검은 하늘에 온몸이 우물인

  둥근 창문이 떠오른다

 

  바람 세찬 날 나무는 혼절할 것처럼 꽃을 비웠다

  깜박깜박 잔별 져내린 자리에 연둣빛 풋사과가 돋았고

  그리고 낙과의 하혈을 견디었다 사과나무는 만선이었다

 

  달빛 반짝이는 양철지붕 아래, 과수원 안채에는

  과육에 저며드는 칼날처럼 아름다운 사람이 찾아왔었다

 

 

                                     시집『장미의 내용』, 50쪽 수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