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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산 시인

수건의 비망록 / 이미산 https://cafe.daum.net/dgpoetry/Jj6K/1200?svc=cafeapp&searchCtx= 대구신문 <좋은 시를 찾아서> 461 이미산 시인[좋은 시를 찾아서] 수건의 비망록                                  이미산 시인 내가 닦아줄 수 없는당신의 물기그때 우리의 포옹은 길어몸 밖으로 흐르는 강섣부른 위로 끼어들지 않게cafe.daum.net 더보기
모자 모자 이미산 누군가의 음성을 듣고 싶을 때 사람들은 허공으로 모자를 던졌다 모자를 쓰고 웃는 사람 앞에서 거울은 더 솔직해지기로 했다 허수아비가 웃고 있다면 지난 밤 별이 된 사람의 심장을 빌려온 것이다 일생을 모자처럼 살다 간 사람처럼 허수아비가 별빛을 흘리고 있다 지친 여행자의 표정은 신神의 형상이 되고 가슴엔 빈자리가 있다 멀고도 가까운 그곳에 닿기 위해 새들은 새벽부터 노래했다 밀지 좀 말라니까, 한데 엉킨 남자들 여자들 아침마다 지하철을 밀었다 노인은 절뚝거리며 꿈을 빠져나왔다 신神이 허공을 닮았다는 사실을 알고부터 사람들은 엎드리는 버릇이 생겼다 모자 위에서 놀던 새 한 마리 사라졌다 빌려 쓴 이름 같은 남겨진 깃털 하나 한 사람이 허수아비처럼 서 있다 그의 잠든 발자국들 곧 깨어날 것이므로 .. 더보기
하품하는 사과 / 이미산 하품하는 사과 이미산 나도 모르는 내 안의 사과 사과의 인기척은 입을 한껏 벌리며 까마득히 거슬러 오르다 문득 멈춰 서서 두리번거리는 현기증, 그때 들려오는 목소리 잘 살고 있니? 사과의 내부는 향긋하다고 믿는 순간 사방으로 번지는 투명의 테두리 사과가 눕는다 뜨거운 몸살 준비하는 사과적 입술 소리는 인사가 아니에요, 터지려는 울음 차곡차곡 접어 사과 밖으로 던지며 기억하는 사과가 사라진 사과를 떠올릴 때 뼈가 된 과육은 순종하듯 구부러지고 몇 생을 걸어왔을 사과의 내용은 망각이 남긴 암전이라는 평안, 바라보면 외로워지는 하현달, 발자국 주렁주렁 매달고 기다릴 최초의 나무 당겨온 날들 반죽해 돌멩이처럼 던져보는 회유의 습관 때로는 멀리, 어쩌면 가까이, 더러는 없다고 중얼거리는 그곳을 찾느라 사과는 자꾸.. 더보기
빨랫비누가 닳아지듯이 / 이미산 빨랫비누가 닳아지듯이 이미산 오래 끌고 온 얼굴 하나가 봄 햇살에 스르르 지워지듯이 어느 결혼식에서 듣는 주례사 사랑은 닳아지듯이 빨랫비누가 닳아지듯이 빨래를 비빌 때 태어나는 거품과 사라지는 거품과 구멍 숭숭한 어깨와 희미해지는 미소 평생 비벼낸 거품들 꽃비로 돌아오는 봄날 이마가 반짝반짝 눈동자 그렁그렁 춤추며 재회하는 동그라미들 한 번 더 사랑하려는 당신 또 당신들 계간 , 2020년 여름호 (일부 수정) 더보기
개별적인 노을 / 이미산 개별적인 노을 이미산 강을 건너기 전 자신의 숨소리에 집중하는 누 기다렸다는 듯 강 건너엔 노을이 드리워졌다 누군가는 거대한 혓바닥이라 하고 혀의 선천적 감성이라 하고 바라보는 자의 피로 기어코 완성된다는 저 붉음 저 아름다움 입술을 핥아본다, 이 짧은 거리, 분주했던 순간들, 혀로 거두어들인 무수한 숨결들의 종착지, 하나의 혀가 받아낸 수많은 순간들의 종착지, 혀에 대한 취향도 없이 다만 극적으로 태어나는 저 아름다움 고요한 혀가 고요한 혀로 건너가는 붉음의 역사 몸을 허락한 강물이 서둘러 취하기 시작한다 역류하는 심장처럼 만취한 노을 속으로 뛰어드는 누 떼 문득 차갑고 문득 뜨거운 지금 계간 , 2020년 여름호 더보기
박병수 시집 <사막을 건넌 나비> 무거운 돌 박병수 그림자가 그림자를 받아주는 풍경처럼 두 사람이 다가왔다 역광이라 생각하면 두 사람이 아닌 한 사람이겠지만 그림자가 젖어있다 그림자는 말리셔야겠습니다 불빛이 흔들리고 그림자가 그림자를 부축한다 세상은 젖어있고 가볍게, 혹은 깃털처럼 우리는 이 말들을 뒤적이며 ‘불 탄 자리에도 풀들이 자란다면 좋겠어요’ 가볍게, 혹은 깃털처럼 어깨 위는 내린 눈의 대지, 두 손으로 눈송이를 받으면서 가볍게, 혹은 깃털처럼 우리는 이 말들을 깔고 앉아 따뜻해진 돌멩이를 주워든다 가볍게 혹은 깃털처럼, 이 말들을 포갠 후에 돌을 눌러 놓는다 한 손은 재가 묻은 땅을 짚고 남은 손은 돌멩이의 묘혈처럼 움푹하다 박병수 시집 『사막을 건넌 나비』 중에서 인간은 꿈꾸는 者이면서 현실이라는 삶에 발을 딛고 산다. 현실.. 더보기
안소니 홉킨스의 84번지 / 이미산 안소니 홉킨스의 84번지 이미산 어떤 사소한 기다림이 달콤한 불행이었다는 한 남자의 주소, 채링크로스 84번지로 사람들이 몰려갔다 만개하는 불행의 꽃들 그때 언뜻 꽃잎 하나 흔들렸다면 오래 목말랐을 어머, 어쩜, 어쩐지, 같은 기다림의 씨앗이 꽃들에게 뿌려진 것 이해는 위로를 낳아 84번지의 고독한 등과 풍부한 주름살과 건조한 미소 속 달콤해지는 꽃들의 자세 스스로 가장 불행하다는 탕웨이*가 남은 생을 헌정하기 위해 채링크로스 84번지에 당당히 도착했고 날씨마저 쾌청했으므로 그녀에게 해석되기를 기다리는 그 남자, 이를테면 사라진 안소니 홉킨스*, 사라진 책들, 사라진 중얼거림 따윈 이미 사소해졌을지도 모른다 누구에게나 아끼는 꽃말 하나쯤 있고 어머, 어쩜, 어쩐지, 같은 현실을 발견한다면 화들짝 탕웨이!.. 더보기
다저녁 / 이미산 다저녁 이미산 누가 공중에 거대한 솥단지 걸어놓았나 거기, 튀어나가기 위해 웅크린 참깨처럼 볶아지길 기다리는 나와 모르는 사람들 지구 반대쪽에서 걸어오는 발자국 소리 그리고 문간에 서있는 아버지의 부릅뜬 눈 달궈지는 발바닥과 몸을 문질러 확인하는 달콤한 공기 통과하라! 빙하에 갇힌 어둠의 심장에 빗금을 그어라 휘감기는 어둠이 빛 하나 내어줄 테니 밤의 입술로 빚은 춤추는 그림자들 손 내밀어 가능한 밤의 매혹 참깨가 튀는 방향이면 어디든 계간 2020년 봄호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