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인번호 5705번, 그녀는 애벌레를 키운다
그녀는 감옥 안에서 노래한다
노래하는 자유만 있을 뿐이다
노래는 자폐를 살해하는 힘을 숨기고 있다
간수의 눈빛이 그녀를 옥죄일수록 흑빛
노래가 애벌레처럼 쏟아져 나온다
다른 수인들도 노래를 부르며 견딜 것이다
견딤보다 몸서리치게 아름다운 것이 또 있을까
아름다움의 끝에 닿으면 노래에게서 버려질 것이다
노래로부터 버려지고 싶은 그녀를 위해
누더기 같은 수인번호를 가위로 자른다
자르는 순간 다시 엉겨 붙는 속성을 지닌
더러운 번호, 징그럽게 알을 깐다, 오글거린다
그녀는 알았다, 감옥 안의 노래가 감옥 밖의
노래보다 살인적으로 자유롭다는 걸
유영금 시집, <봄날 불지르다>, 1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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