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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시

봄 바다에서 / 박재삼

 

 

 

 

     봄 바다에서

 

                                           박재삼

 

 

 

 

 

 

 

  화안한 꽃밭 같네 참.

  눈이 부시어, 저것은 꽃핀 것가 꽃진 것가 여겼더니 피는 것 지는 것을 같이한 그러한 꽃밭의

  저것은 저승살이가 아닌 것가 참, 실로 언짢달 것가. 기쁘달 것가.

 

  거기 정신없이 앉았는 섬을 보고 있으면,

  우리가 살았닥 해도 그 많은 때는 죽은사람과 산사람이 숨소리를 나누고  있는 반짝이는

  봄바다와도 같은 저승 어디쯤에 호젓이 밀린 섬이 되어 있는 것이 아닌 것가.

 

  우리가 소시적에, 우리까지를 사랑한 남평문씨 부인은,

  그러나 사랑하는 아무도 없어 한낮의 꽃밭 속에 치마를 쓰고 찬란한 목숨을 풀어 헤쳤더란다.

  확실히 그때로부터였던가, 그 둘러쌌던 비단 치마를 새로 풀며 우리에게 까지도 설레는 물결이라면

  우리는 차마 안자락으로 코 훔쳐 주던 때의 머언 향내 속으로 살 달아 마음 달아 젖는단 것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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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 이 시가 와닿는 까닭은...

   창문 밖으로 내다보는 풍경, 바람에 살랑이는 나무들, 걸어가는 사람들, 허옇게 뻗어간 산책로, 그 사이사이로 놓인 정지된 사물들 함께

   어우러져 오후를 향해 치닫는, 시간이라는 것, 삶이라는 것, 살아있음은 인식하는 것, 눈 앞에 보이는 것들 내 안으로 끌어와 함께 살비

   비며 만져보고 찔러보는 것, 그런데 창문 너머의 풍경과 방안에 놓인 나와의 이 한없는 거리, 한없이 투명한 이 거리가 내미는 막막함.

   내가 살아있음은 허상인가. 이곳운 이승이고 저 창문 밖은 저승인가, 혹은 그 반대인가, 이다지 먹먹한 순간들이 왜 이토록 자주 오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