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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시

목의 위치 / 김행숙

 

 

 

 

     목의 위치

 

                                   김행숙

 

 

 

 

  기이하지 않습니까. 머리의 위치 또한.

 

  목을 구부려 인사를 합니다. 목을 한껏 젖혀서 밤하늘을 올려다보았습니다. 당신에게 인사를 한 후

  곧장 밤하늘이나 천장을 향했다면, 그것은 목의 한 가지 동선을 보여줄 뿐, 그리고 또 한 번 내 마음

  이 내 마음을 구슬려 목의 자취를 뒤쫓았다는 뜻입니다. 부끄러워서 황급히 옷을 입듯이.

 

  당신과 눈을 맞추지 않으려면 목은 어느 방향을 피하여 또 한 번 멈춰야 할까요. 밤하늘은 난해하지

  않습니까. 목의 형태 또한.

 

  나는 애매하지 않습니까. 당신에 대하여.

 

  목에서 기침이 터져나왔습니다. 문득, 세상에서 가장 긴 식도를 갖고 싶다고 쓴 어떤 미식가의 글이

  떠올랐습니다. 식도가 길면 긴 만큼 음식이 주는 황홀은 천천히 가라앉을까요, 천천히 떠나는 풍경

  은 고틍을 가늘게 가늘게 늘리는 걸까요, 마침내 부러질 때까지 기쁨의 하얀 뼈를 조심조심 깎는 중

  일까요. 문득, 이 모든 것들이 사라져요.

 

  소용없어요, 목의 길이를 조절해봤자. 외투 속으로 목을 없애봤자, 그래도 춥고, 그래도 커다란 덩

  치를 숨길 수 없지 않습니까.

 

  그래도 목을 움직여서 나는 이루고자 하는 바가 있지 않습니까. 다리를 움직여서 당신을 떠나듯이.

  다리를 움직여서 당신을 또 한 번 찾았듯이.

 

 

                  

                                                                              - <문학사상>, 4월호

                                                                                      - <현대시 작품상 추천작>, <현대시>, 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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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지금, 내 옆에 없다는 사실이 불현듯 기이하게 느껴질 때, 그것은 납득되지 않거나 부정하고 싶은 감정과는 다른, 발화지점을 정확하게 파악할 수 없는 곳으로부터 튕겨져 나온 돌발적인 '사건'에 다름 아니다. 당신의 부재가 상실이나 고통이 아닌 '기이함'으로 감지된다는 것, 그 이해불가능함은 역설적으로 '들린 상태'의 다른 판본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그러니 지금, 내 옆에 존재하지 않는 당신의 '위치'야말로 기이한 것이지 않겠는가. 그렇게 사랑의 (이해)불가능함은 불현듯, 제 깊이를 더해 간다.

 

                                 *

 

  '당신은 지금, 왜 내 옆에 있지 않는가?라는 물음은 당신과 나를 비롯한 거의 모든 것들에 대한 진술처럼 들리지 않는가. 그것은 당신과 나의 '위치'에 관한 물음이다. 당신은 나의 어디쯤에 '자리'하고 있는가, 나의 얼마만큼을 '차지'하고 있는가. 그러나 당신은 나로부터 얼마나 떨어져 있는가, 나는 왜 당신을 찾지 못하는가, 왜 당신을 보지 못하고 부르지 못하는가. 그럼에도 왜 당신은 쉬지 않고 나에게로 육박해 들어오는가. 가파른 감정선을 타고 끝없이 이어지는 물음의 연쇄들, 해답에 이르는 경로를 이탈한 물음들.

 

                               *

 

  마치 처음으로 당신을 알게 된 순간처럼, 쏟아져 나오는 물음들은 실은 당신과 내가 함께한 익숙함으로부터 비롯되는 것이다. 그러나 당신과 내가 보낸 익숙함만큼, 우리는 애매하다. 당신과 나의 자명한 '위치'는 역설적으로 그 자명함만큼 애매하고 기이한 것이지 않을 수 없다. 자명한 것들이 기이하고 난해한 자리에 놓이게 될 때, 모든 것이 처음 만나는 것처럼, 이해불가능의 영역에 놓이게 된다. 그 무엇도 설명할 수 없지만 숨 가쁘게 충만한 상태, "문득, 이 모든 것들이 사라져"버릴 것처럼 위태롭게, 떨리는.

 

                             *

 

  당신의 시선을 피해 올려다본 밤하늘은 그저 검은 어둠으로 덧칠되어 있는 것이기에, 당신에 대해서 아무 것도 말해주지 않기에, 난해할 수밖에 없다. 무엇이 저 익숙한 밤하늘을 난해하게 만드는가. 내 시선의 귀착점은 왜 당신이 아닌 저 어두운 밤하늘인가. 무엇이 당신과 나 사이를 애매하고 난해하게, 이어주고 있는가.

 

                            *

 

  통로들, 관절들, 고리들, 접속어들, 목소리가 나오는 모든, 애매하고 기이한 '사이'들,

 

                            *

 

  목 [명사] : 머리와 몸의 사이를 잇는 잘록한 부분, (목)구멍, 모든 물건의 입구, 열매가 더부룩하게 달리는 이삭이 있는 부분, 다른 곳으로 빠져나갈 수 없는 중요한 통로의 좁은 곳, (목)소리가 나오는 곳, 모든 것을 녹여버릴 수 있는 - 그러나 맛보지는 못한 - 식도가 있는 곳, 기침이 나오는 곳, 텅 비어 있는, 공명통,

 

                           *

 

  목이 어떤 기능을 하며, 심지어 그것이 무엇이냐고 묻는 것보다 '목의 위치'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이 당신과 나에 대하여, 그리고 우리들의 위치에 대하여 더 많은 것을 알려줄 수 있을 것이다. 머리와 몸 사이에 자리하고 있는 그것은, 모든 것이 통과해야만 하는 곳임과 동시에 그것들이 다른 곳으로 빠져나갈 수 없는 위치를 동시에 가지는데, 마치 모든 열매가 열리는 것과 같은, 예측불가능한 기침이 터져 나오는 곳, 텅 비어 있기에 그 위치를 명확하게 이야기할 수 없는, 그러나 숨길 수 없는 (목)소리가 울리는,

 

                        *

 

  그러므로 가닿을 수도, 멀어질 수도 없는 위치에서, 기이하고 난해한 표정으로, 발돋움을 하고 입짓하는 목의 동선이 이루고자 하는 바를 좇아서, 우리는.

 

 

                                                                                                                               - 김대성,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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