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발표시

꽃과 꿈 사이 / 이미산

꽃과 꿈 사이

 

이미산

 

 

꿈은 어둠이 키우는 꽃송이

숨결은 꽃잎 보듬는 투명한 이불

 

꽃은 늘 도망가려고

꿈이 아니면 시들고 말겠다고

 

꿈과 꽃의 거리는 닿을락 말락

그때 먼 곳에서 무릎이 접히고

한 무리의 어둠과 빛이 섞이고

허공의 춤이 청룡열차처럼 지나가고 나면

길이가 다른 손가락이 생겨나는 일처럼

태어나지 않은 시간의 베일이 벗겨지지

 

똑 똑 똑

여느 아침처럼 잠든 아이를 깨우는 목소리

오래된 방으로 이동해 싹을 틔우려는 씨앗

아이는 해가 잘 드는 집이 꽃의 안락한 거처임을 알기에

활짝 피어날 그날을 위해 한동안 밤을 지새우지

마침내 봉오리가 되어 눈을 뜨려는 순간

 

꿈 밖은 무서운 세상 같아

경적을 울리는 자동차들 태양을 흉내 내는 네온사인들

내 꿈은 어디에 두지?

두려움에 기다리고 또 기다리며

여기가 어딜까 중얼거리며

씨앗의 생을 반복 중이지

 

아이의 동공에 어린 낯선 기류는

도착하지 않은 꽃의 향기

어쩌면 백 년 후쯤 발화할지도 모를

블랙 유머

 

꿈은 시들지 않기 위해 자주 눈을 깜빡이지

때로는 외로운 듯 혼자서 춤을 추지

 

           계간 <시인정신> 2023년 겨울호 

'발표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수건의 비망록 / 이미산  (0) 2025.04.07
업데이트 중입니다/이미산  (0) 2023.12.13
초록의 숨소리는 똑딱똑딱 (재수록)  (0) 2023.10.10
여름 지나 여름 / 이미산  (0) 2023.08.21
저물녘 / 이미산  (0) 2023.06.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