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과 꿈 사이
이미산
꿈은 어둠이 키우는 꽃송이
숨결은 꽃잎 보듬는 투명한 이불
꽃은 늘 도망가려고
꿈이 아니면 시들고 말겠다고
꿈과 꽃의 거리는 닿을락 말락
그때 먼 곳에서 무릎이 접히고
한 무리의 어둠과 빛이 섞이고
허공의 춤이 청룡열차처럼 지나가고 나면
길이가 다른 손가락이 생겨나는 일처럼
태어나지 않은 시간의 베일이 벗겨지지
똑 똑 똑
여느 아침처럼 잠든 아이를 깨우는 목소리
오래된 방으로 이동해 싹을 틔우려는 씨앗
아이는 해가 잘 드는 집이 꽃의 안락한 거처임을 알기에
활짝 피어날 그날을 위해 한동안 밤을 지새우지
마침내 봉오리가 되어 눈을 뜨려는 순간
꿈 밖은 무서운 세상 같아
경적을 울리는 자동차들 태양을 흉내 내는 네온사인들
내 꿈은 어디에 두지?
두려움에 기다리고 또 기다리며
여기가 어딜까 중얼거리며
씨앗의 생을 반복 중이지
아이의 동공에 어린 낯선 기류는
도착하지 않은 꽃의 향기
어쩌면 백 년 후쯤 발화할지도 모를
블랙 유머
꿈은 시들지 않기 위해 자주 눈을 깜빡이지
때로는 외로운 듯 혼자서 춤을 추지
계간 <시인정신> 2023년 겨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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