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녀가는 새벽비
이미산
잠결에 듣는 빗방울 소리
누군가 담장을 넘어온다 후두둑,
내 귓속 걸어 다닌다 후두둑,
낡은 가방과 비릿한 냄새와 활짝 열어젖히는 벽지의 꽃잎들 소설의 한 장면처럼
나는 눈을 꼭 감아준다
내 숨소리가 부리는 발자국들
소설이 행간에 숨겨놓은 질문은 이상理想을 찾아 집을 떠난 사내가
떠돌고
떠돌다
마침내 소설 밖으로 걸어 나올 때
어디로 가나 앙상한 유토피아
누가 안아주나 파르티잔의 고독
나는 눈꺼풀 속에 그를 눕히고 자장자장
멈추었나 싶으면 걸어가고 사라졌나 싶으면 거기 서 있는
발자국 내 귓속에 뿌리내린
그림자 몰래 키우는
그가 담장을 넘어간다 훌쩍 넘어온다 기웃기웃
돌아보고 돌아서는 발자국의 훌쩍임
나는 눈을 꼭 감고
두 손을 꼭 모으고
2021년 <시사사> 엔솔러지 (2011년 <시산맥> 봄호, 발표작 수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