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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표시

침착의 선물 / 이미산

  침착의 선물*

 

       이미산

 

 

  아쉬취리는 두 아이의 엄마

  순례객 실어 나르는 과부마방

 

  노새의 이름은 꽃이 핀다

  비틀거리는 노새에게 그녀가 소리친다, 꽃이 핀다 꽃이 핀다

 

  노새의 노래가 매리설산에 닿아

  뼛조각으로 누운, 역시 과부마방이었던, 그녀의 엄마를

  깨운다 협곡에 울려 퍼지는 쉰 목소리, 꽃이 핀다 꽃이 핀다

 

  녹초가 되는 밤

  그녀의 가슴에 몸의 꽃이 피려할 때

  어둠 속 서성이는 얼굴을 초대한다 웃는 별 하나가 오르골 소리를 내며

  걸어 온다 오르골 오르골, 코 고는 소리 같은

  기다림

 

  별은 담장 높은 그녀의 꿈속으로 들어오지 못한다

  어둠의 잠꼬대가 보글보글 끓는다, 떠나야한다 아니다 떠나고 싶다 아니다 ……

 

  한 달에 두 번 그녀 지갑이 활짝 열린다

  따뜻한 밥

  따뜻한 잠

  따뜻한 물에 담긴 가족이 마주보며 웃는다, 꽃이 핀다 꽃이 핀다

  발아를 기다리는 꽃씨들 학교로 돌아가고

 

  터벅터벅 그녀와 노새가 걸어간다

  설산의 눈이 다 녹을 때까지

  노새의 등에 꽃물 들 때까지

 

       

*침착의 선물: 아테나가 오디세우스에게 준 선물. 폭풍우를 이겨내게 함. 율리시즈1, 170. 범우사

 

        2021<시터>동인지 수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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