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명한 뼈
신용목
고생대가 데려가지 않은 은행나무 아래서 빗소리를 듣는다
버려진 그늘
비스듬히 지붕이 어둠을 내려놓을 때
가득 저녁을 베어 문 비의 입들이 바닥마다 아프게 토해놓는
저 울음의 뼈에는 까마귀의 발톱이 찍혀 있다
허물어진 성벽
어느 왕조의 외곽이 촘촘한 구음으로 멸망하는가 어둠을
운구하는 구름의 발가락뼈
그러나 정작 재난은 창문 안에 있다 저 방들은
하나씩 우주가 버리고 간 빛 봉다리
담겨져 끊임없이 풍화하는 눈빛들의 아린 암각화
그러므로 어둠의 농도를 믿을 수 없다 버려진 풍경을 할퀴는
까마귀의 깃털처럼
가장 먼 이별에서 가까운 이별로 몸을 긋는
밤의 빗살무늬
몇 장 유서를 대신하여 떨어지는 고생대의 낱장들
아래서 비를 본다
각각이 아픈 생김 침엽도 오래 안으면 더운 심장 은행잎인 것을
비는 창살이 되어 제 뼈를 내건다 저 어둠 까마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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