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식구에 관한 추억
박철(1960~ )
댓돌 아래 할짝이던 개가 있었다
오뉴월 염천, 아버지 개 끌고 산으로 올라간다
삐삐선 엮어 개의 목을 두르고 가지 위로 걸었다
소나무 조금 휘청거렸다
개는 뭔 일인지 몰랐다
개, 하늘 보며 뒤룽거린다
삐삐선이 풀렸다
땅에 떨어진 개 달려나간다
아부지 개 달아나요
냅도라 집으로 돌아올겨
댓돌 아래 돌아와 서성이는 개가 있었다
아버지 다시 데리고 산에 오른다
개는 정말 뭔 일인지 몰랐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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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밖에 대문 앞에 묶어 키우는 황구를 키운 적이 있습니다. 시리얼 같은 사료 말고 찌그러진 누런 냄비에 식구들이 먹다 남긴 밥에 반찬 마구 섞어서 뜨겁게 한 그릇 쏟아주면요, 어디 숨겼다 저리 빼나 싶게 쭉 뻗은 혀로 그걸 싹싹 비우곤 하였지요. 오지게 싸대던 똥을 삽으로 치우는 일이 만만치는 않았지만요, 그래도 큰 덩치에 피워대던 어리광이 꽤 볼 만했어요. 동글동글 굴리던 눈동자는 순정했으니까요. 그런데 어느 날부터 밤마다 그 개가 늙은 여자의 곡소리를 내는 거예요. 집안에 변고가 있음을 예견하는 짓거리라고 동네 어른들이 혀를 끌끌 차셨고 정말이지 얼마 안 가 엄마가 큰 수술을 하게 되셨지요. 사람들이 들이닥쳤어요. 그들을 향해 맹렬히 짖어대는 개는 제 집 속에서 송곳니를 뾰족하게 드러낸 채 제 죽음과 싸우느라 한창이었습니다. 나밖에 없었기에, 내가 다가서자 헐떡거리며 집 밖으로 뛰어나와 내게 안기던 개. 비닐 포대에 담겨서도 발버둥치지 않은 이유, 죽음으로 저 역시 우리와 한 식구였음을 재차 확인하고 싶었던 건 아닐까요. 오랜 제 죄의식의 밑바탕에 개도 컹컹 짖고 있더라는 얘깁니다.
김민정(시인)
- daum 까페<푸른시의 방>에서 퍼 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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