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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문 및 리뷰

황지우 시집 『나는 너다』를 읽고 / 이미산

 

나는 내가 버겁다

   - 황지우 시집 『나는 너다』를 읽고

                                                            이미산

 

 

 

 

 

  1980년 문학과 지성사를 통해 시단에 나온 황지우 시인의 세 번째 시집인 『나는 너다』(1987년 풀빛刊)는 시인의 명성에 비해 대체로 알려지지 않은 시집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이 시집에서 특히 눈에 띄는 것은 시의 제목 대신 쓰인 숫자이다. 503.부터 시작되어 187. 126. 126-1. 등 두서없이 이어지는 숫자에 대해 누구나 호기심이 생길 것이다. 시인은 後記에서 "제목을 대신하는 數字는 서로 변별되면서 이어지는 내 마음의 불규칙적인, 자연스러운 흐름 이외에 아무것도 아니"라고 했지만, 그래서 독자로 하여금 더 궁금증을 불러일으킨다. 당시의 서울시내 버스 번호일까? 지금은 통합시스템에 의해 일련의 체계적인 번호로 바뀌었지만, 그 시대를 거쳐 온 사람이라면 시내버스 번호에 동의할 지도 모르겠다. 시의 내용과 연관지어 유추되는 유력한 추측일 수도 있다. 격정의 시대를 살아낸 지성인으로서, 시대상황의 인식에 반응한 시인으로서 결코 '아무것도 아니'지는 않을 거라는 것이 시인을 아끼는 독자로서의 확신이다.

  80년대 이성복과 쌍벽을 이루며 한국의 문단을 빛냈던 황지우. 그의 시들은 7~80년대의 격동기를 헤쳐 온 그의 삶과 고뇌를 매우 솔직하게 드러낸다. 첫 시집부터 읽어온 독자라면, 특히『나는 너다』에서는 숨 가쁘게 달려온 삶을 뒤돌아보고, 그것의 파장을 사유하며, 그 파장을 온몸에 무늬로 새기고, 다시 내디딜 걸음에 대해 스스로 내공을 다지는 지점에 위치한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비오는 날이면, 아내 무릎을 베고 누워, 우리는 하염없이 노래를

     불렀다. 우리가 젤 좋아하는 노래는

 

 

     강물아 흘러흘러 어디로 가니

     넓은 세상 보고 싶어 바다로 간다.

 

 

                                       는 동요이다.

     그 方舟 속의 권태롭고 지겨운 시절이, 이제는 이 지상에서 우리

     가 누릴 수 있었던 지복한 틈이었다니!

     넓은 세상 보고 싶어라. 華嚴의 넒은 세상.

     들어가도, 들어가도, 가지고 나올 게 없는

     액체의 나라.

     나의 汚物을 지우는, 마침내 나를 지우는 바다.

                                                   -「182.」전문

 

 

  위 시에선 세상으로 나아가 세상에 맞서 거칠게 살아온 사내로서의, 지아비로서의 따뜻함과 비애가 동시에 드러난다. 아내 무릎을 베고 누워 하염없이 동요를 부르는 광경, '강물아 흘러흘러 어디로 가니/넓은 세상 보고 싶어 바다로 간다.' 아내와 함께 하는 남자로서의 삶과, 넓은 세상을 향해 나아가야 하는 사내로서의 야망이 충돌하는 지점이다. 삶이란 하나를 버려야만 하나를 얻는 냉혹함 앞에서 우리는 먹먹해진다. 좁은 방에서 아옹다옹하며 권태롭다고 느낀 순간들, 돌아보면 그때가 지극히 행복한 시절이었다. 현실은 늘 팍팍하고 막막하다. 그러나 넓은 세상, 華嚴을 향해 시인은 가야한다. 스스로 자신에게 짐 지운 역할과 세상을 위해 기꺼이 해야 하는 일들……. 이 순간 시인은 갈등하는 자신의 오물을 지우고, 자신의 존재마저도 지우는 깊은 바다로의 잠입을 꿈꾼다. 시인의 지친 심신이 언뜻 회한으로 전해진다. 무겁다. 이제 재미있는 시 한편을 보자.

 

 

     애인이 내 앞에서 짬뽕을 먹는다.

     아름답다.

     나는 지금 사발에 든 너의 똥을 본다.

     너의 썩은 棺에서 송장 메뚜기들이 통통 점프한다.

                                                      -「66.」전문

 

 

  얼핏 초현실의 냄새가 난다. 짬뽕을 먹는 애인을 아름답다고 느끼는 나와, 그런 내가 "사발에 든 너의 똥을 본다."? 여기서 '너'는 시집의 제목처럼 곧 '나'로 읽어도 무방하겠다. 짬뽕을 아름다운 애인의 똥으로 본다면, 시인은 짓궂은 사내다. 그렇다면 이어지는 '너의 썩은 관과 송장 메뚜기들이 통통 점프하'는 이미지는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아름다움을 넘어 사랑스러워 죽겠다는?

 

 

     영덕으로 가는 길목에서 짧게 엽서를 띄우오.

     가슴이 콩콩 뛰고 퇴계로를 가다가도 혼자

     엉엉 울어버리던 슬픔이 나를 여기까지 오게 했오.

     세상에서 가장 가련한 나라, 이 나라 슬픔을 횡단하여 오늘,

     나, 무너지는 東海 앞에 섰오. 폭우의 예감을 잔득 진 바다 위로 내리는 잿빛

   빛의 雨傘, 소형선박들이

     급히 돌아오고 이곳에도 젖은 삶이 있다는 것을,

     고된 그날그날과 아파하는 우리나라 사람이 있다는 것을,

     포구에 까욱거리는 육식의 굶은 갈매기떼가 아우성치고 있소. 동해, 동해, 내

   진흙같은 절망을

     난타하는. 성난 닭의 깃털을 단 파도가

     돌아가라, 빨리 돌아가라 하오. 내일 보경사 들렀다

     상경하겠오. 경주는 안 가오.

                                  - 「46.」전문

 

  엽서를 띄우는 형식으로써 발화되는 시적 언술은 문장자체가 드러내는 의미에서 나아가 또 다른 의미를 획득한다. 우리가 시라고 규정하는 정형성을 벗어나는 행간의 자유로움과 형식을 벗어던진 자유로운 감정의 토로, "가슴이 콩콩 뛰고 퇴계로를 가다가도 혼자/엉엉 울어버리던 슬픔이 나를 여기까지 오게 했오.", "내일 보경사 들렀다/상경하겠오. 경주는 안 가오." 등의 표현에서 엽서를 쓰는 시인의 사각거리는 펜 소리에 읽는 사람의 귀가 열리는 듯하다. 조국의 현실과 미래를 걱정하는 깊은 숨소리가 바로 옆자리에서 지켜보는 듯이 전해진다. 생생한 감각이 부여하는 현장성은 진정성과 이어져 시의 깊이와 울림을 획득한다. 형식의 파괴가 가져온 파장이 문장 속 진실과 버무려져 시 전체의 맥락을 보다 살아 숨쉬게 하는 예상 밖의 효과를 획득한다.

  이 시집의 또 하나 독특한 점은 跋文이다. 대학시절의 친구이자 문학 활동을 함께한 홍정선의 마음을 담은 글은 인간 황재우(황지우의 본명)의 속살을 비춰준다. "날카롭고 과격한 그의 시와 달리 그의 사람됨은 더없이 따뜻하고 부드럽고 나약하고 우유부단하"다는 것이다. 시인과의 일화와 더불어 그 시절 문청들의 삶을 엿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시인은 해남의 '솔섬'이라는 곳에서 태어났다.

 

 

       재우에게 있어 가난의 원초성은 결코 도시적인 데에 있지 않다. 그의 시에 나오는

     신림동의 시장바닥이나 산동네의 풍경은 그 원초성의 확산이지 원초성 자체는 아니

     다. … (중략) … 전라남도 해남의 외딴 조그만 소읍 어란, 그리고 거기서 배를 타고

     가는 솔섬, 그곳은 제도교육의 기나긴 시간과 유신체제 이후의 사회적 소용돌이에 휩

     쓸려 표면적인 그의 의식세계 속에서는 사라졌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언제나 그의 인

     생여정이 출발하고 끝맺는 편안한 귀소지로서 그곳은 그의 무의식 속에 오두마니 도

     사리고 있다.

                                                                                                     -139~140쪽

 

 

  그의 신춘문예 등단작인 「연혁沿革」은 솔섬과 시인 一家의 풍속을 잘 드러내고 있다. 다음에 소개하는 시 역시 객지를 떠도는 사내의 고향에 대한 연민이 개별적 상황을 빌어 잘 형상화된 작품이다. 존재와 귀향에 대한 따뜻하면서도 쓸쓸한 슬픔을 드러낸다고 하겠다.

 

 

     나는 어란으로 가기 위하여 읍내 '나그네의 집'에서

     하룻밤을 묵는다.

     "집은 어디서 왔다요?" 성도 이름도 없는 여자가 묻는다.

     "수상해?" "북에서 내려왔어."

     그녀가 나를 꼬집는다.

     "너는 어디서 왔냐?"

     여수에서 영등포로, 미아리에서 부산으로, 목포로, 완도로, 해남으로

   왔다, 그녀는. 대흥사 여관동네에서 한 2년?, 있다 장터까지 왔다, 그

   녀는.

     "너도 끝장까지 왔구나."

     "아저씨는 눈이 내 애인 닮았소잉."

     "뭐 하는 놈인데?"

     "중."

     밤 늦게까지 그는 그녀에게 막걸리 주전자를 따라주고 암자로 올라

   가곤 했다, 그 중은. 산 전체가 단풍으로 色이 탱탱할 때, 그는 通道

   寺로 가버렸다, 그 중은.

     그녀는 광주 공용터미날까지 가서 배웅했다, 그녀는.

     슬픈 가을 산으로 돌아왔다.

     "내가 환속한 그 중놈이야, 내가." 쓰게 웃는다, 그녀가.

     그녀는 내 품 안으로 파고든다.

     못생기고 늙은 이 작은 여자를 나는 넓은 가슴에 묻는다.

     "집은 어디 간다요?"

     "어란."

     "어란 어디?"

     "솔섬"

     "거기 누가 있소?"

     "아냐, 아무도 살지 않아."

     횃대로 올라가는 닭, 그녀는 이내 잠이 든다.

     1983년 12월 24일, 나는 지상에서 한 여자를 재웠다.

     첫 미사를 알리는 천주교 종소리에 깨어났을 때, 그녀는 없었다.

   2만원만 챙기고 내 호주머니에 3만원을 넣어 두고 간 그녀의 발자

   욱을 금세 눈이 지우고 있었다.

     나는 어란으로 가기 위하여, '나그네의집'을 나왔다.

                                                        -「233.」전문

 

 

  영화처럼 녹아드는 풍경과 서사가 있어 쉽게 읽히면서도 울림이 크다. 어떤 기교와 사유에 앞서 진솔함과 진정성이 우선한다는 시 창작의 기본을 환기시킨다. 시 속의 '그녀'와 '나'와' '그 중'은 떠돌이 삶의 쓸쓸함에 있어 한 치 모자람 없이 대등하다. 나아가 지상의 삶을 꾸려가는 우리네 누군들 이와 같지 않을까. 그래서 아프고 그래서 따뜻하다.

시집 제목이기도 한 '나는 너다'라는 문장은 시편 곳곳에서 발견된다. 무슨 의미를 함유하고 있는 걸까. 다른 시집에 비해 덜 날카롭고 덜 과격하다고 할 수 있는 시집의 마지막에 수록된 시를 읽으면서 제목이 주는 시인의 의도를 짐작해 보자.

 

 

     꼬박 밤을 지낸 자만이 새벽을 볼 수 있다.

     보라, 저 황홀한 지평선을!

     우리의 새 날이다.

     만세,

     나는 너다.

     만세, 만세

     너는 나다.

     우리는 全體다.

     성냥개비로 이은 별자리도 다 탔다.

                                       -「1.」전문

 

                          2013년 1월호 <웹진 시인광장> <시인의 추천시집 >수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