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염없이
이미산
화창한 대낮이다
어둠의 냄새 진동한다
담장 위를 기어가는
미소가 남아있는 구부러진 수염 한 올
어둠의 시력은 안으로 자라
속살 드러낸 지평선이 어둑하다
어둠이 어둠을 몰고 이동 중이다
서로의 손목을 이어 지상의 가장 먼 길을 만든다
동공 속에서 구름을 활짝 꽃피우는 짐승처럼
시선은 먼 곳의 기척에 닿아 있다
별들이 눈부신 어둠을 타고 지상에 내려와 잠들 때
저 환한 발바닥은 방금 누군가의 몸이 빠져나간 껍질
온기가 남아있는 아직들
모든 목숨의 처음 쪽으로 흘러가
어둠은 환한 길이 되려한다
우리가 꿈속에서 찾아 헤맨 애타는 비상단추 같은
연분홍 손톱을 키우며
대낮의 가장자리에 앉아
빛의 소멸을 지켜보는 어둠
쓰러진 빛줄기 감아올려 거대한 무덤을 만든다
죽음이 쏟아지는 대낮이다
계간 <제3의 문학> 가을호 수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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