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의 가시들
이미산
정오의 시간,
정수리에 내려온 태양이 내게
말을 건다, 벌써 3월이네
팔리기도 전에 지루해진 책의 표정처럼
다짐들 허공으로 검은 싹을 틔우고
왼쪽과 오른쪽, 처음과 끝이 쉴 새 없이 중얼거리며
순간을 이어갈 때
지구 한 바퀴 훌쩍 돌아나온 초침이
다시 길을 떠난다, 관성의 뼈를
순간처럼 흔들며
3월의 태양은 우연히 내 방에 도착했다
우연의 빛살들이 속눈썹 깜빡이며
초침 끝에 서서 날개를 턴다
일초의 간격으로 황금빛 나비들 날아오른다
3월이네, 3월이네, 3월이네……
정수리 열고 달아나는 내 눈알들, 사나워지는 슬픔들
나는 먼 과거처럼 앉아있다, 째깍째깍
눈알이 없는 속눈썹 깜빡이며
시계가 배설한 숫자처럼 찌그러진 태양이
검은 침을 질질 흘린다
계간 『시와 표현』2012년 여름호 수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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