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미한 노랑
이미산
어떤 기다림은 스스로 어두워지려한다
그늘 아래 웅크리고 앉아 내부를 오래 만지작거린다
계절이 생목을 게워내고
희미해지는 것들 한 방울의 수혈을 기다리고
낡은 수첩의 이름 하나를 파내고 있을 때
무심코 물어오는 안부에 눈물이 나왔다
햇빛이 무릎을 맴돌 때
안부를 전해오듯 빛의 관자놀이가 팔딱거렸다
어두워진 내부가 인사 없이 사라졌다
무릎이 따뜻해지는 동안
어떤 손바닥이 돌아왔고 감촉이 꿈틀거렸다
희미해지는 과정을 만질 수 있다면
기다림은 생겨나지 않았을 것이다
씩씩한 발목인가 싶으면 저만치서 흔들리는 그렁한 눈빛
저 버려진 신발 한 짝은 언제 다 지워지나
산수유 꽃이 피면 오래 지켜온 자리가 좀 더 유일해진다
순간이 순간에게 되돌아가는 길목에서
남겨진 몸들은 제자리 뱅뱅 돈다
<다시올문학> 2012년 가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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