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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표시

쪼그려앉아 걸레질 하기 / 이미산

 

  쪼그려 앉아 걸레질하기

                                        이미산

 

 

 

대낮의 부뚜막에 올라앉은 고양이

젖은 걸레 한 장으로 뭘 하지?

 

쓰윽 바닥을 훑으니 숨긴 꼬리가 나타난다

젖은 발바닥에서 날개가 솟는다

발랑까진 미소와 화창한 대낮이 섞인

기분 좋은 부뚜막이 완성된다

 

시선을 견디는 호박꽃이여 안녕

나는 너의 캐릭터가 맘에 들어

누구나 옆구리에 키우는 짐승 한 마리

꽃물 범벅된 귀퉁이와 후회를 되감는 눈알이 보이니

 

부뚜막을 부수고 아궁이 없는 옥상으로 가야지

만삭의 달을 삼켜 발바닥 없는 아이를 낳아야지

탐스러운 꼬리도 없이 평생을 한 곳에서 피었다 지는

저 달 속 잠들지 못하는 고양이들

쪼그려 앉아 바닥을 파는 발바닥들

 

슬픔이 햇살처럼 자라는 당신을 위해

웃자란 발톱일랑 뽑아버려야지

발랑까진 꼬리도 잘라버려야지

보다 겸손하게 보다 은밀하게

발바닥과 발바닥이 만나는 부뚜막

 

새로운 스타일 맘에 드니?

아흔아홉 개의 꼬리로 날개를 흔들며

바닥의 굴레를 벗어나 볼까?

태양의 반대쪽으로 당당하게 이름표를 달고

어서와 당신, 여긴 내 환한 부뚜막이야

 

                                 웹진 <문학 in> 2012년 4월호 수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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