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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표시

달력 / 이미산

 

 

  

  달력

                              이미산

 

 

 

 

 

 

어머니 뇌신 한 봉지 입속에 털어 넣는다.

하얗게 부서진 바람이 몸속으로 미끄러진다.

나는 오늘에 동그라미 하나를 덮어씌워

벌겋게 달아오른 열매 하나를 벽에 매단다.

 

 

지상의 뜨거운 것들 다 빨아들인 그림자가

골(骨)속에 갇힌 어머니를 부르며 방안을 빙빙 돈다.

취한 바퀴처럼 부풀어오른 어머니

구석에 조용히 드러눕는다.

 

 

저 지붕은 언제쯤 차가워질까요.

 

 

식지 않는 어머니를 해라고 불러야겠어요.

그 많은 뇌신을 삼켰으니 돌멩이라 불러야겠어요.

바싹 구워 절구에 빻아 가루로 날려야겠어요.

노을빛 따라가는 슬픈 유령이면 좋겠어요.

 

 

얼마나 더 뜨거워야 저 산을 넘을 수 있을까요.

얼마나 더 부풀어야 허공에 설 수 있을까요.

차곡차곡 접힌 종이를 풀어 날려 보낸 바람이

시들지 않는 열매가 되어 돌아올까요.

내 창문에 매달려 평생을 흔들릴 수 있을까요.

 

 

어머니 손등이 단숨에 늙어버릴 수 있을까요.

찌그러진 해처럼 부뚜막에 앉아

날마다 뇌신을 삼키는 어머니

 

 

푹 자고 일어나면 창문이 되어있을지도 몰라

나는 아이의 이마를 짚으며 해가 뜨기를 기다린다.

어서 오너라, 뒤란에서 바스락거리는 어머니

심장이 달처럼 식어야 열매가 될 수 있단다.

 

                                격월간 <시사사>, 2012년 1-2월호 수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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