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처에 대하여
이미산
산판트럭이 지나갔다
검은 마루 위로 먼지가 내려앉았다
언니들 묵묵히 엎드린 채 나이를 받아먹었다
먼지처럼 고요한 오후
내 몸 구석구석을 돌아 나온 길이 난간에 서 있다
길이 나를 밀어내며 다시 길이 되려 하고 나는
길을 덮어 먼지가 되려 한다 수만 개의 길과 수만 개의
먼지가 서로 엉킨다
구름이 탁자 위에서 꿈틀거리다 먼지를 품고
창문 밖으로 떠난다 수십만 개의 먼지가 내 안에서
다시 길을 낸다
멀어지는 산판트럭의 꽁무니가 나를 끌고 간다
끊어진 길들이 이어지고 마루에 내려앉았던 먼지들
낮은 지붕들 하나 둘씩 꿈틀거린다 나는 먼지 하나를
잡으려 천천히 일어난다
계간 <포엠포엠>, 2012년 봄호 수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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