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말 상회
임승유
이곳에서 기분이 시작된다 아내를 죽여야겠다는 김씨의 결심도 이곳에서
시작되고
염소는 바다를 뜯었다 염소가 부지런히 바다를 삼키는 동안 마을에서는 파
도치는 소리가 들렸다
김씨는 제 목구멍 안에 울음을 쏟아 넣으며 출렁였다 소주병이 꾸고 있는 꿈은
그런 식이다 사물들이 꿈을 꾸지 않는다고 말할 수는 없다 식물들은 중심으로부
터 점점 희미해지는데 왜 끝이 더 아름다운가 서서히 파란색이 완성되는 칼끝에
서 오늘 하루는 시작되고
눈을 감았다 뜨면 세계는 천천히 증발하기 시작한다
지나가는 여자의 손에 들린 대파처럼
차양 아래 염소의 목이 골목을 향해 뻗어나간다 염소는 목이 탄다 느낌이 시작
되면 골목은 끝장을 보게 되어 있다 파국의 고요는 그래서 슬프다
골목 끝까지 달려 나가 뒷목을 잡는 손
의도도 없이 온도를 전달하는 손
염소는 문틈으로 스며드는 그림자를 씹는다 씹어도 씹어도 삼켜지지 않는 그림
자가 염소의 이빨 사이에 끼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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