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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시

월면 채굴기 / 류성훈

    월면 채굴기

                               류성훈  (2012 한국일보신춘문예 당선작)

 

 

 

  몸 누일 곳을 모의하러 온 새 몇 마리가

  소독된 달 표면을 마름질했다

  실외흡연구역의 담뱃불이

  바람 안쪽에 수술선을 그었을 때

  세 번째 옮긴 병원에서도 아버지의 머릿속

  돌멩이는 깨지지 않아

  한 몸 추슬러 가던 길들만 허청거렸다

  온 세상이 앓으면 아픈 게 아니고

  매일 아프면 그것도 아픈 게 아니라고

  위독한 시간들을 한 곳에 풀어놓으면서

  아버지가 고요의 바다 어디쯤을 채굴하고 있었다

  병들도 힘 빠질 무렵

  두개골을 망치질하는 마른기침이

  울퉁불퉁한 삶 쪽으로 흔들렸다

  몸속의 돌은 달 뒤편의 돌 같아

  닳고 닳은 땅 밑보다도 단단하고

  검을수록 깊은 광맥에 이어져 있는데

  어느 갱도에서 그는 길을 잃었을까

  저 큰 굴착기가 가지고 나올 단단한 돌

  돌아와 때때로 돌아눕던 그는

  다리의 성근 터럭을 젊은 내게 보여주었다

  달의 얼룩이 지구에 뿌리를 내린 날

  아무에게도 거기서 뭘 했는지 말해주지 않았다

  창 밖 저탄더미, 캐낸 달빛이

  벌써 내게 문병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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