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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시

비상구 / 홍일표

 

 

 

 

 

 

    비상구


                                                                           홍일표




나비의 날개에 뼈가 생겼다고 생각하는 순간

꽃은 낙하를 결심한다

꽃잎은 공평하게 태양의 마음을 나누어 가진다


꽃의 스위치를 작동하는 흰 손이 구름 밖 먼 곳에 있는 건 아니다


아무도 소유하지 못했던 바람의 몸에서 뼈를 발라내도

지난 세기의 여진은 남아 핏줄을 타고 돌아다닌다


나비가 하나의 풍경에 골몰하여 뿔이 돋아나고

아직 이곳에 오지 않은 빗방울이 그리워질 때

나비의 몸에서 비의 발자국 같은 무수한 빗금이 발견된다


허공을 찢으며 폭발한 바람은 복잡한 회로의 머리카락을 타고

마음이 죽은 바위 속으로 밀항을 결심한다


숨구멍마다 백 년 전 허공이 눈멀어 살듯

나비는 꽃향기가 오가는 길만 찾아다니다

어느 날 자기도 몰라보는 꽃이 된다


돌멩이 같은 허공의 틈새가 조금 더 벌어진다

                         

                                  시안2010년 겨울호 수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