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선
권오영
바람 든 내가 둥둥 날아간다
바람의 속도 속에서 나는
가죽이 된다
주머니가 된다
주머니 속에 담고 다녔던
무슨 생각
색깔이나 모양
꽃 이름이거나 사람 이름
이름 속에서도 냄새가 났던 것 같은데
바람 속에서 바람일 뿐 냄새도 없다
인천서 수원까지 다 오도록
새까맣게 소나기 쏟아지는 날
지갑을 잃었다
젖은 주머니 젖은 바지가 이끌고
가는 길이 낯설었다
그 길 다 지나도록
수십 개의 풍선을 밟고 오는데도
아무렇지 않았다
주머니 하나에 다 들어 있었을
빵빵한 것들
내 얼굴과 내 번호
숫자 어디쯤에서 걸리는 무슨 증명
한꺼번에 날아가버린
바람의 증명
나는 나에 대해 증명할 수 없다
나라고 하는 노인이
바람 빠진 주머니 속에서 누군가를 찾는다
탈피한 벌레집 같은 곳
그 어느 둥둥,
날아가던 한때를 늙은 손이 뒤적거린다
나를 습득한 누군가는 내가 되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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