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열두 시 때문에 시계를 차지 않는다
나의 열두 시엔 정오가 없다.
모든 수립이 일제히 셔텨를 내리는
자정만이 나의 열두 시다.
열두 시엔 박정희 장군이 살아 있다.
통행금지와 거리를 달리는 백차가 있다.
시월유신의 흉흉한 그림자가
펄럭이지 않는 열두 시는 열두 시가 아니다.
앵앵거리는 사이렌 소리와
계엄군의 군홧쇠,
내 심장은 초침보다 정확하게
하낫 둘 하낫 둘
섹스도, 걸음도, 밥먹는 것도 하낫 둘 하낫 둘
조금도 틈을 주지 않는 열두 시.
세상의 모든 시계를 부셔버릴 거야.
열두 시를 없애버릴 거야.
하나도 남김없이 죽여버릴 거야.
아, 이것도 열두 시 안에 마쳐야 해.
식은 땀을 흘리며 깨어나면,
어김없이 내 뒤통술ㄹ 후려치는 시곗소리.
나는 시계를 차지 않는다 열두 시 때문에.
원구식 시집, <마돈나를 위하여>, 87쪽.
'배달된 시집 혹은'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내 몸을 건너는 만월 / 홍승주 (종려나무) (0) | 2010.05.28 |
---|---|
붉은 편지가 도착했다 / 박미라 (현대시시인선) (0) | 2010.05.28 |
입술 / 강인한 (시학) (0) | 2010.05.28 |
내 마음의 UFO / 박무웅 (현대시 시인선) (0) | 2010.05.28 |
하늘새 / 정영숙 (시안황금알시인선) (0) | 2010.05.2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