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수, 샤넬 N° 5
이미산
당신을 생각하면 입안에 고이는 사과향의 식욕
당신을 생각하는 하루가 시작되고 숨 쉬고 노동하며 다시 당신을 만나러 꿈속으로 달려가는
이 단조로운 경로가
당신이라는 작은 동그라미에서 꺼내는 조금 낯선 당신
이를테면,
홀로 즐기는 뿌듯한 식사, 어제 구입한 최신유행의 모자, 들을수록 빠져드는 음악, 잠자는 욕망 일으켜 세우는 어떤 투명한 목소리
다시 하루가 시작되고 숨 쉬고 노동하며 당신을 만나러 달려가는
이 단조로운 경로가
당신이라는 작은 동그라미에서 꺼내는 한층 낯선 당신
이를테면, 뻐끔거리는 붉은 입술, 차츰 조밀해지는 하이힐 소리, 짧은 스커트 너머로 들썩이는 절벽, 침묵에 가려지는 두꺼운 이력, 불면에 탐스럽게 익어가는 영혼
불현듯 최소한의 어느 틈이 급격히 팽창하고
검은 구멍에 뚫린 내 영혼이 물처럼 줄줄 새나가는
만져볼 수도 들여다볼 수도 없는 깊숙한 그곳에서
내 중심을 휘감은 채 웃고 있는 괴물
한층 무섭고 무거운 당신
이를테면, 하얀 욕조에서 피어오르는 검은 아지랑이, 난간을 서성이는 샛노란 날개, 칼날 위로 떨어지는 푸른 눈물, 햇살의 동아줄을 타고 오르는 보랏빛 안개, 식은 달처럼 떠 있는 누군가의 얼굴
<현대시 2007.12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