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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시

나는 눈물이다 배용제

 
나는 눈물이다
                                                       배용제
 
 
 
 
나는 눈물이다
 
비가 그친 뒤, 흘러가지 못한 채
 
나뭇잎 풀잎에 앉아 흔들리다 때를 놓쳐버린 눈물
 
 
잎새 아래 웅덩이로 굴러 떨어지는 눈물
 
높다란 건물 위에서 추락하다 투명한 유리창에 얼룩지는 눈물
 
나는 웅덩이에 갇혀 있다
 
 
고랑을 이루고 내를 이루어 굽이치고 싶던 꿈,
 
떠돌던 먼지와 뒤섞여 점점 메말라가는 눈물
 
더러 사람들이 이놈의 진창하며 비켜가는 눈물
 
모퉁이 음지에 낮게낮게 엎드려도 자꾸 움츠러드는 눈물
 
 
희고 투명한, 아른거림으로 비치는 눈물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릴 눈물
 
그러나 그때 나는 허공을 굽이쳐 흘러가는 꿈,
 
가장 가벼운 무엇의 일부가 되는
 
그날까지 나는 그저 눈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