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자나무 꽃
이미산
누가 자꾸만 내 뽀얀 맨살에 열꽃을 새겨요
미풍에 실려 온 붉은 편지들 마당 가득 떠다녀요
저 투명한 햇빛 거꾸로 타고 올라
구름 속으로 무한정 달려가는 상상에 빠져요
겹겹의 담장 넘고 또 넘으면
전신을 휘감는 이 뜨거운 것들의 배후가 드러날까요
생의 궤도를 조종하는 분홍빛 영혼 만날 수 있을까요
진초록 이파리들 내 숨결 받아내고
내 붉은 고독까지 견고한 눈길로 지켜주네요
참았던 비명 차올라 입술 한 겹씩 열릴 때마다
오래된 길이 가늘게 뱉어내는 소리
명자,
한 번 쯤 내 붉은 담장을 지나갔을 당신도
타는 입술로 암호처럼 중얼거린 적 있지요
명자, 명자,
담장 밖 서성대는 그림자 하나 불러 세워
먼 시간을 건너온 휘파람 한 줄기 얹어
단숨에 담장 안으로 뛰어든 적 있지요
봄이 또 가고
숨겨놓은 여정의 보따리에서 툭,
낯설게 떨어지는 명자,
어느 해 이마에 밤새도록 새겼을 빛나는 명자,
생쥐들이 조금씩 갉아내 멀고 먼 장소로 물어 나른
그 명자,
봄은 다시 오고
붉은 꽃무늬 원피스가 유행한다는 이 계절
명자는 구식 옷걸이를 벗어나지 못하네요
바퀴살이 빠진 자전거 뒷자리를 홀로 지키네요
마른 젖꼭지로 흘러간 노래 한 구절 흥얼거리네요
쓸쓸히 허공을 날아 가네요
나의 명자는
<현대시. 2006. 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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