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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표시

동창회 /이미산



   동창회


    이미산

       

 

   ‘자라다의 어원은 장소와 무관하다

   아이는 어디서든 자라니까

 

   또 싹이 돋았네,

   시큰둥한 어깨가 있었다

   마음은 감춰야하는 결핍들의 처소이므로

 

   아이는 맨발의 속도로 자랐다

   이제야 운동화를 신었다며 하얗게 웃을 때

   여백이 따라 웃었다

 

   햇빛은 쑥쑥으로 겹쳐지고

   그늘은 씩씩으로 드러누울 때

   어둠을 빠져나와 등을 쓰다듬는 것

 

   ‘자라다를 이해하는 여백은 중력의 방향으로 기울어졌다

 

   깃발이 먼저 도착하는 귀향

   끈질기게 감추거나 끈질기도록 드러내거나

   수줍게 자라거나 수줍도록 단단하거나

   아이는 묵묵해진 것들의 고향이므로

 

   결석이 많던 아이가 마이크를 잡았다 하굣길 쉬어가던 느티나무

   그 가지 끝에 매달린 소용돌이

   여백은 오래도록 푸르러

 

   어둠이 발갛게 익어가고

   쑥버무리처럼 서로 엉긴 잠꼬대들

   고백하기 시작했다



                계간 <시와편견>, 2019년 봄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