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발표시

춤추는 붉은 수의 / 이미산

 

   춤추는 붉은 수의

                            이미산

 

 

 

   늙은 잎새는 예감으로 흔들린다

   자주 취하던 아버지, 그 기울어진 어깨를 향한 구름의 초점 잃은 시선들 술잔에 출렁이던

 그해 가을처럼

 

   빈혈의 햇살은 조용히 술잔을 채운다

 

   말수가 줄고 앙상한 가지는 햇살을 더듬거리고 몇 개의 성한 기억은 지워진 손금을 찾아

같은 길을 오르내린다

 

   취기 오른 잎새들 자주 담장 밖을 내다본다 바람 따라 우왕좌왕하거나 반쯤은 흙에 묻혔

거나 이미 사라진 것들의 빈자리

 

   가을저녁이 붉다 예감에 미리 수의를 입고 문간을 서성인다 어둠이 내리기 전 아버지는

이미 방향을 정했을 것이다

 

   남아있는 시간을 흔들어 깨운다 흩날리는 몸은 천천히 춤이 된다


                                                                <다시올문학>, 2017년 겨울호

'발표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2017 시인협회 사화집 (나팔꽃 / 이미산)  (0) 2017.10.12
겨울나비 / 이미산   (0) 2017.09.06
청진기/ 이미산  (0) 2017.06.26
다시 여름 / 이미산   (0) 2017.05.01
암표상 / 이미산   (0) 2017.05.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