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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힘을 주는 것들

손현숙의 <지난 계절의 시 읽기>/ 이미산 『베개』

   

베개를 안고 중얼거린다,

꿈속에서 만나

꿈속의 일이란 베개 마음

베개의 양식을 구하러 거리로 쏟아진

뒤통수들, 두리번거리는 중얼거리는

저 반복적인 행위는 배고픔인가

반복은 유혹이다 어떤 뒤통수도 감당할 수 있다고

뒤통수의 끝은 달콤하다고

밤마다 살살 문지른다

다정하게 끌어안는다 최초의 반가움으로 사랑스러워 죽겠다는 듯이

그러므로 어제는 편백나무로 오늘은 라텍스로

기다려 줘 달나라 토끼도 잡아올 테니

송두리째 바칠게

삼만육천 번의 동침이면 어떤 뒤통수도 말랑말랑해질 거야

그러니 말해줘 몰래 퍼 나른 꿈에 대해

한숨과 하소연에 대해 이 거래의 끝은 어디인지

사랑을 핑계로 사랑을 떠나는 원앙처럼

베개 찾다 한 생이 저무네

그러니까 끝까지 함께 할 다정이네

지긋지긋한 살덩이네

 

- 이미산, 「베개」전문 (『현대시학』, 2016, 1월호)

  그 베개는 그 베개가 아니다. 베개를 당신 혹은 너, 라고 읽어도 무방하다. 시인이 발화하는 베개는

정면으로 다가서기에는 조금은 애석한 존재들에 대한 사유로 치환해도 좋다. 화자의 시선은 공간과

시간을 무작위로 활보한다. 물론 베개가 갈 수 있는 꿈의 자리도 확보했다가, 금세 이생의 현실 공간

으로 베개라는 모티프를 끌어들인다. 화자는 무엇인가를 지속적으로 반복하는 행위는 “배고픔”이라

육신의 한계를 규명한다. 그것은 신체가 있어서 느끼는 모든 삶의 은유들이다. 화자는 신체가 세상을

감각하는 어떤 방법에 대해 끈질기게 사유한다. 그 최초의 형식으로 “베개를 안고 중얼거린”다. 혼잣

말을 하는 지금은 화자 외에는 다른 누구의 출입도 허용하지 않는다. 그것은 다만 “꿈속에서 만나”

가상의 현실에서만의 조우를 허락한다. 연이 갈리고, 장면은 꿈속으로 뛰어든다. 뒤통수들만 활보하

는 저 도시는 진정으로 어디인가. 화자가 따라가보는 뒤통수의 행렬 속에는 “두리번거리는 중얼거리

는” 허기만이 존재한다. 그런데 삶이란 늘 아이러니해서 잔인하지만 “반복은 유혹”인 것이다. 그래서

목숨이 붙어있는 것들은 매일 잠을 청하는지도 모른다. 쉬지도 않고. 유혹은 “어떤 뒤통수도 감당할

수 있다고” 베개 머리에 대고 매일 속삭이다. 그 모든 고통의 끝을 감당할 수 있을 것처럼 “뒤통수의

꿈은 달콤”하고 그 달콤함의 유혹 속에는 “기다려줘 달나라 토끼도 잡아 올 테니”라는 치명이 있다.

목숨을 걸고 그곳에 닿으면 정말로 달나라의 토끼를 만날 수 있는 것일까.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삼

만육천 번의 동침이면 어떤 뒤통수도 말랑말랑해질 거야” 혼자 베갯머리를 쓰다듬어보겠지만, “이

거래의 끝은 어디인지” 아무도 모른다. 버릴까, 버릴 수 있을까. 이 쯤이 되면 다시 시의 첫 줄로 돌

아가서 “베개를 안고 중얼”거리는 장면의 필연을 알 듯도 하다. 너무 오래 마주쳤고, 너무 오래 바라

보았던 뒤통수와의 거래는 결국 “꿈속에서 만나”가 정답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어쩌랴, 시인은 스스

로가 베고 벗고 내다 말려야 보송해지는 베개의 정체는 “그러니까 끝까지 함께 할 다정”으로 귀결

짓는다. 그것은 “지긋지긋한 살덩이” 어디다 내다 버릴 수도 없는 곁님! 일지도 모른다.

                                                     -손현숙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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