젖는다
이미산
기분을 걷어내니 길이 남았다
구름을 걷는 발자국들
서로 다른 방향에서 온 여자와 남자는
왼손잡이와 오른손잡이의 악수처럼
웃었다
가방은 맹세하지 않는 구름의
기분까지 이해하므로
하릴없이 지퍼를 여닫는 습관과
굳게 잠긴 대문을 오래 들여다보는 오후가
기분의 본질이듯이
상상에 젖은 눈동자 속 웅크린 바람이
길의 속살이듯이
성당에 도착한 햇빛은
막 울음을 그친 아이처럼 두리번거렸다 숨을 크게 들이쉬면
감정에 충실한 오토바이가 반복적으로
무릎을 폈다 접었다 비사실적인 모퉁이가
궤도에 진입하는 동안
먼 곳을 불러내
소용돌이를 만드는 길의 응시
모르는 기분들의 난무
열리거나 열리지 않는 가방 속
웹진 <시인광장>, 2016년 3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