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발표시

젖는다 /이미산

 

젖는다

 

   이미산

 

 

기분을 걷어내니 길이 남았다

구름을 걷는 발자국들

 

서로 다른 방향에서 온 여자와 남자는

왼손잡이와 오른손잡이의 악수처럼

웃었다

 

가방은 맹세하지 않는 구름의

기분까지 이해하므로

 

하릴없이 지퍼를 여닫는 습관과

굳게 잠긴 대문을 오래 들여다보는 오후가

기분의 본질이듯이

상상에 젖은 눈동자 속 웅크린 바람이

길의 속살이듯이

 

성당에 도착한 햇빛은

막 울음을 그친 아이처럼 두리번거렸다 숨을 크게 들이쉬면

감정에 충실한 오토바이가 반복적으로

무릎을 폈다 접었다 비사실적인 모퉁이가

궤도에 진입하는 동안

 

먼 곳을 불러내

소용돌이를 만드는 길의 응시

 

모르는 기분들의 난무

열리거나 열리지 않는 가방 속

 

 

             웹진 <시인광장>, 2016년 3월호

'발표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청춘/이미산  (0) 2016.03.21
오르골/이미산  (0) 2016.03.17
이미자 / 이미산  (0) 2016.02.26
재/ 이미산  (0) 2016.02.24
제사/이미산  (0) 2016.02.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