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울어지는 것들
이미산
햇빛은
어느 날 문득 기울어졌다
창문의 가로와 세로의 비율이 무너지고
희미한 등 뒤로 구름이 미끄러지고
한 발짝 비껴났을 뿐인데
갑자기 통보받은 이별처럼
세상으로부터 멀어지는 이 기분
여름을 따라가다 정수리가 훤한 초록빛
남몰래 오므라드는 가파른 호흡의 꽃잎들
슬픔의 각도는 완성될 수 있을까
스스로 돌아가는 기도바퀴처럼
옥상 환풍기 갈비뼈가 다 드러났다
소음이 일시에 멈추었다
헤어진 다음날처럼 결심이 필요한 때
내가 떠나거나
나를 떠나거나
기울어진 풍경 앞에서 우두커니 서 있을 때
계간 <다시올문학> 2013년 봄호 수록
'발표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사마귀처럼 앉아/이미산 (0) | 2013.01.21 |
---|---|
옴니버스 형식의 잡념 / 이미산 (0) | 2013.01.21 |
우산들 / 이미산 (0) | 2013.01.10 |
자반 고등어 / 이미산 (0) | 2012.12.31 |
복서 / 이미산 (0) | 2012.08.2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