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당
- 아드리앵 플랑테 씨에게.
프랑시스 잠
우리 집 식당에는 윤이 날 듯 말 듯한
장롱이 하나 있는데, 그건
우리 대고모들의 목소리도 들었고
우리 할아버지의 목소리도 들었고
우리 아버지의 목소리도 들은 것이다.
그들의 추억을 언제나 간직하고 있는 장롱.
그게 암 말도 안 하고 있다고 생각하면 잘못이다.
그건 나와이야기를 나누고 있으니까.
거기엔 또 나무로 된 뻐꾹시계도 하나 있는데,
왜 그런지 소리가 나지 않는다.
난 그것에 그 까닭을 물으려 하지 않는다.
아마 부서져 버린 거겠지,
태엽 속의 그 소리도.
그냥 우리 돌아가신 어르신네들의 목소리처럼.
또 거기엔 밀랍 냄새와 잼 냄새, 고기 냄새와 빵 냄새
그리고 다 익은 배 냄새가 나는
오래된 찬장도 하나 있는데, 그건
우리한테서 아무것도 훔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는 충직한 하인이다.
우리 집에 많은 남자들이, 여자들이
왔지만, 아무도 이 조그만 영혼들이 있음을 믿는 사람은
없었다. 그래 나는 빙그레 웃는 것이다,
방문객이 우리 집에 들어오며, 거기에 살고 있는 것이
나 혼자인 듯 이렇게 말할 때에는
----안녕하신지요, 잠 씨?
프랑시스 잠 시집,『새벽의 삼종에서 저녁의 삼종까지』, 곽광수 옮김, 민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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