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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시

꿈의 남자 / 이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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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꿈의 남자

          - 김경주 시인에게

 

                                                   이영주

 

 

 

  그는 여러 개의 머리가 한곳을 향해 누워 있는 벽

 

  벽 틈을 매일 밤 끌로 파냈습니다

 

  태양의 표면적인 지름을 지팡이로 잴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부스럭부스럭 떨어지는 가루들

 

  여러 개 중 하나의 머리를 들어서 뒤로 물러나는

 

  그의 자리에서 꿈의 밑바닥이 한 귀퉁이씩 보이기 시작합니다

 

  전등이 켜지기 전에 돌아가고 싶은 털 달린 꼬리들

 

  나는 그가 꿈속으로 들어가 죽었다는 문장을 읽습니다

 

  마침내 그는 음악처럼 안으로 진입하는 데 성공한 것입니다

 

  이제 내일의 단계는 벽 틈에 새겨두고

 

  웅크린 나에게 구덩이 하나를 파주고 내려간 것입니다

 

  벽에 기대로 있는 하루가 너무나 천천히 흘러갑니다

 

  꿈속에 엎드려 꼬리로 연주하는 그의 입술에서

 

  선홍빛 털들이 조금씩 흩날리고

 

  달빛이 없는 밤에는 상한 우유를 마십니다

 

  바람 아래서 태어난 사람

 

  별과 태양의 궤도가 만나는 지점

 

  나는 가만히 일어나 벽 틈에 손을 넣고 하루를 뒤섰습니다

 

  참을 수 없는 향기가 흘러나오고 있습니다

 

  가장 밑바닥 문을 열어두고 그는 숨죽여 울기 시작합니다

 

  전등이 켜지는 순간입니다

 

 

 

 

                                           현대문학, 2011년 1월호 수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