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째 주에 온 사람
김성대
그는 슬로 모션으로 왔다
토끼 몇 마리가 그의 고독 주위를 천천히 돌고 있었다
둘째 주에 온 사람
그는 너무 천천히 왔기에
그가 오고 있는 게 아니라
시간이 조금씩 그를 옮기는 것처럼 보였다
그에게 감기는 시간은
벽화 속을 걷는 것처럼
그의 등 뒤에서 다시 흘렀다
둘째 주는 토끼몰이로 시작되었다
슬로 모션으로 도는 토끼들은 쉽게 몰아졌지만
너무 느리게 돌고 있었기에 우리는 계속 빨랐다
토끼와 함께 토끼 사이에서 우리는
그의 고독 주위를 빙빙 돌아야 했다
멀리서 보면 그의 고독을 숭배하는 것처럼 보였을 것이다
고독의 신도들처럼 둘째 주가 되면
우리는 그를 둘러싸고 그의 고독을 돌았다
그의 고독은 자성을 띠게 되었고
토끼의 귀 모양만으로도 둘째 주가 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다시 올 건가요?
둘째 주가 지날 때마다 묻곤 했지만
떠날 때도 올 때와 같이 슬로 모션이었기에
우리는 그가 떠나는지도 몰랐다
그는 떠나지도 돌아오지도 않는데
그는 여전히 느렸고 우리는 계속 빨랐기 때문에
그가 떠나고 돌아오는 것처럼 보였는지도 모른다
떠나고 돌아오는 것은 우리였는지도
그의 고독에 감기는 시간
아주 느린 토끼들
그는 한 사람이 아닐지도
그의 고독은 하나가 아닐지도 모른다
둘째 주에 온 사람
아무리 천천히 와도 그가 누구인지 알 수 없었고
벽화 속을 사는 것처럼
둘째 주가 되면 우리는 상세해졌다
시집, 『귀 없는 토끼에 관한 소수 의견』, 민음사, 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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