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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시

볼트와 너트 / 정운희

 

 

 

 

 

                                                    

   볼트와 너트

                                        정운희

  

  볼트와 너트란 말을 입 밖으로 밀어내자

  너라는 이름의 모든 벽이 참 따듯해졌다

 

  태초의 말씀을 타고 어둡고 환한 빛이 여러 날 번갈아가며 흘러들었다 나라는 이름의 문을 열기 위해 한 평생을 달그락거렸다 누군가 이따금 그 문을 열어 몸의 방향을 바꿔놓았으며 계절을 바꾸고 노아의 방주에 선택된 암수 동물 한 쌍처럼 소리들이 자랐으며 먼지와 바람이 들락거렸다 서로가 서로의 심장을 마주보며 평생을 서서 늙어가는 나무도 있다 볼트와 너트는 각기 다른 자궁에서 태어났으나

 

  부드럽게 접근할수록 강하게 완성된다 집중적이지만 공격적이지는 않다 손끝에 숨겨 놓은 길을 신중하게 감지해야 한다 천기를 누설해도 안되며 불온한 자들을 따돌려야 한다 서로는 서로에게 깊숙해져야 한다 차갑고 단단할수록 아이는 따듯하게 늙어갈 사랑을 낳을 것이다 내가 너를 이토록 원하고 있으므로 가까이 더 가까이 깊숙이 더 깊숙이 끝장을 봐야 한다

 

  볼트와 너트란 말을 입 안으로 밀어 넣자

  세상의 모든 벽이 혀끝에서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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