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발표시

소용

 

    소용  

                                                이미산

 

 

 

 

  한주일 내내 한 가지 생각에 매달렸다

  애써도 소용없는 생각들

 

 

  항아리 소용, 궁글막대 소용, 존재의 작은 쓰임새 소용, 하찮은 용기 소용,

내가 당신을 부를 때의 소용, 달려온 당신이 내 주변을 서성이는 소용, 생생

해라 나를 보고 웃는 소용, 당신에게만 향하는 내 충실한 혈관 소용, 당신이

바라보는 지금의 나 그 소용

 

 

  辭典 속에 누워있는 소용은

  한 백년쯤 삭힌 절실일까

  내 어지러움 십년이면 어느 소용의 뼛조각 하나

  될 수 있을까

  한 번 더 불러본다 소용아

 

 

  검은 비닐 속에서 부패중인 어제,

  오늘은 담장을 기어오르는 장미,

  어느 것이 한 시절을 풍미한 기생의 입술이며

  어느 것이 겨우 도착한 미풍의 안부인가

  칠이 벗겨진 초록대문 너머로

  지친 개는 엎드렸다 긴 하품 속으로

  당신과 나 사이가 말려들어간다

 

 

  2009년 여름 어느 오후를 지나는

  나의 소용에 그림자 드리우고

  다시 시작되는 뒤척임

 

 

  부패한 소용이 떠날 때

  내부는 한껏 부풀어있었다

  뼈다귀들 쫑긋 귀를 세웠다

 

 

                                   월간 <현대시> 2010. 1월호 수록

 

 

 

 

'발표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내 동굴 속 박쥐   (0) 2010.04.13
키스   (0) 2009.12.15
위구르 / 이미산   (0) 2009.12.02
화양연화 2   (0) 2009.09.09
아귀   (0) 2009.09.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