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은 종종걸음으로
이미산
달그락거리는 수저소리
밥 냄새는 언제나 뭉클해
문간에 떨어진 나뭇잎 하나가
말라가는 힘줄에 한번 더 힘을 줄 때
지붕 속에 봉인된
고즈넉한 어느 날의 시작이 있었고
손등에 달빛을 심어 잉태시킨
서로를 당겨온다는 약속이 있었고
영원은 너무 멀다며 킥킥거렸지만
막 도착한 떨림이 영원의 증거라며
달의 뒷면에 우리를 꼭꼭 숨겼지
뒷면 순례를 마친 자들의 정처 같은
영원을 잃어버린 이후들의 껄렁한 농담 같은
바람이 길을 재촉한다
나뭇잎 하나가
뒷면으로 가기 위해 사력을 다할 때
동그란 구멍 속으로 숨어버린 달이
하얗게 상기된 영원이
계간 <포엠포엠> 봄호
'발표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베란다 / 이미산 (0) | 2020.02.09 |
---|---|
청산도/ 이미산 (0) | 2020.01.21 |
우리는 잊기 위해 / 이미산 (0) | 2019.11.14 |
다뉴브강의 신발들 / 이미산 (0) | 2019.11.14 |
나는 비를 모르고 / 이미산 (0) | 2019.09.2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