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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문 및 리뷰

첫 시집 인터뷰 / 신명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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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시집 인터뷰

신명옥 시집『해저 스크린』

 

 

<불안과 고독과 플라토닉러브>

 

 

신명옥 ․ 이미산

이미산: 반갑습니다. 먼저 시집 발간을 축하합니다. 2006년 등단이신데 10년이 넘어 첫 시집이 나왔습니다. 하실 말씀이 많으시겠죠?

 

신명옥 : 감사합니다. 첫 詩集을 내놓고 어깨가 가벼워졌어요. 가족과 친지들에게 늦게나마 답을 했네요. 그동안 묵묵히 저를 믿어주고 도와주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늦은 등단 이후 첫 시집을 내기까지 또한 만 10년이 넘게 걸렸네요. 시집은 한 번 내고나면 계속 남는 거잖아요. 오래 걸려도 제가 쓰길 원하는 詩에 가까워지면 더욱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아직도 바라는 詩의 길은 멀지만요. 오랜 긴장을 내려놓고 깊은 이완에 들어간 기분이랄까. 이 느낌을 좀 즐기고 싶어요.

 

이미산: 선생님과 저는 늦은 출발의 공통점이 있습니다. 말하자면 여성적 삶으로 연대되는 사이라 하겠지요. 중년이 되기까지 억제된 문학과 여성의 삶이라는 카테고리 안에서의 서사가 무궁무진이겠지요. 여하튼 우리는 등단 십년을 통과했습니다. 그토록 선망이었던 문단에 막상 발을 내딛고 보니 저는 외롭기 짝이 없었습니다. 경험하지 못한 이상한 외로움, 원래 이런 건가, 뭔가 액션을 취해야하나, 어떤 액션인가, 등등의 불안에 시달렸습니다. 한 오년 버티고 나니 나름 내공이 생기더군요. 좋아서 시작했으니 그냥 좋아하면 된다, 초심을 지켜가자, 뭐 이런 식의 합리화를 했죠. 선생님의 자취도 궁금합니다.

 

신명옥: 우리는 같은 해 등단동기지요. 이 길은 정말 외로운 길이에요. 시의 뿌리를 내리기위해, 혼자만의 생각 속에서 허공을 걷듯 지내니까요. 현대시 모임에서 이미산 시인 얼굴이 보이면 반갑고 든든했어요.

등단 이후 십년을 버티다보니 불안을 안고도 일상을 지탱하는 근육이 생긴 것 같아요. 첫 시집을 내고 나니 새로운 시를 써보고 싶다는 소망이 생기네요. 그게 어떤 것이고 어떻게 접근해야 할지 아직 모르지만요. 더욱 어려운 탐색일 것 같아요. 다시 초심으로 돌아갈 시간이네요. 이 길은 또 하나의 탈출구이자 출발점이고 새로운 성장의 기회가 되겠지요.

 

이미산: 그렇군요. 성장의 기회라는 말에 자극이 됩니다. 한 편의 시를 완성하기까지 시인들의 유형은 크게 두 가지가 아닐까 합니다. 시를 얻기 위해 바깥으로 향하거나 방 안에서 골몰하는 경우겠죠. 그리고 발상을 포착하는 지점과 펼쳐내는 방식은 제각기 다를 텐데요. 이를테면 맥락을 잡고 출발하는 경우와 스케치로 시작해 뼈대를 세우는 과정에서 의도나 의미를 도출하는 방식 같은 거죠. 독특한 방식이 있다면 말씀해 주십시오.

 

신명옥: 오랫동안 천천히 밖을 걷거나 멍하니 다른 것을 보고 있으면, 문득 첫 구절이 중얼거려져요. 그러면 그 구절을 붙들고 누워있기도 하고 걷기도 해요. 제가 원하는 방향으로 시가 완성되고 맘에 드는 제목까지 찾을 때도 있지만, 중간에 방해가 많으면 놓치곤 해요. 가능하면 방해를 받지 않는 방식으로 살려고 해요. 그래서 점점 더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려는 욕구가 강해지는 것 같아요.

풍경에서나 어떤 상황에서나 어떤 사물을 보았을 때 이미지가 떠올라 사로잡힐 때가 있어요. 그 장면을 묘사하다보면 그 속에 제가 원하는 상징과 의미가 담기더군요. 한 편이 쉽게 써질 때도 있지만, 틈틈이 읽고 다듬으며 행의 빈 구석을 채워나갈 때가 많아요. 저는 오래 묵히며 쓰는 시들이 정이 가더군요.

 

이미산: 선생님의 시집을 읽어본 저의 느낌은 신산함이랄까, 오독일 수도 있는데요, 방향과 모색에 대한 고투로 읽혀졌습니다. 불안과 우울도 보이구요. 마음공부에 대한 화두도 일관되게 느껴졌습니다. 우파니샤드, 찬드라푸르, 델포이신탁 등등의 용어를 통해 짐작되는 것은 이상향의 욕구로 비춰지기도 하는데요. 독서량이 매우 높은 걸로 알고 있습니다. 시인은 잡학박사여야 한다는 말도 있지요. 선생님은 특히 철학에 대한 관심이 크다고 들었습니다. 시집 속에서 간파되는 불교철학도 상당한 단계에 이르지 않으면 인용하기 어려웠을 텐데요. 영적인 삶 혹은 마음공부에 천착하는 이유라도 있는지요.

 

신명옥: 제 시집을 읽는 분들이 다양한 느낌을 전하더군요. 마음을 다스리기 위한 노력으로 읽기도 하고, 어떤 분은 명상을 한 것처럼 마음이 맑아진다 하고, 적당한 경사면을 흘러가는 강물처럼 운율이 차분하게 흘러간다하고, 어떤 분은 신성이 느껴진다고 하더군요. 우주적 몽상가라거나 순간 수집가라는 해설가의 포착도 있지요. 단순하게 쉽다고 하는 분도, 어렵다고 하는 분도 있고, 아름답다고 하는 분도, 슬프다고 하는 분도 있어요. 서정과 휴머니즘이 조화를 이루었다는 분도 있고, 세심한 관찰력으로 시를 이끌어간다고 하는 분도 있지요. 자기만의 사원을 갖고 있다고 말해주신 분도 있어요.

독서를 좋아하지만 읽고 싶은 책들을 여러 권 뷔페식으로 읽기도해요. 늘 새로운 관심 앞에서 제가 얼마나 무지한지, 텅 빈 백지가 된 기분을 맛보면서요.

생활 속에서 부닥치는 일로 많은 갈등을 해요. 인간관계에서도 서로 다른 성격들이 일으키는 편견과 오해로 시에 몰입하기 힘들 때가 많지요. 그래서 저는 시의 길을 마음공부와 함께 가기로 했어요. 시를 쓰면서 영혼의 성장이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것이지요.

주역은 인간의 운명에 대한 우주적 직관들이 너무 경이롭고 신기했어요. 인간을 다양하게 이해하는 학문이라 생각해요. 시를 쓰지 않았으면 깊이 공부해 보았을 거에요.

 

이미산: 시인들이 대체로 혼자 있는 시간을 좋아하지요. 작업상 그래야 하구요. 고독은 인간을 한 단계 성장시키는 힘이 있고 그 달콤함에 길들여졌을 때 비로소 홀로서기의 완성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러니 기꺼이 고독해야겠죠.

 

 

그래요, 우울의 잠에서 깨어나요, 훈훈한 바람이 사는 바다 건너 사트바*해안에 가기로 해요

항해를 고통의 늪으로 만드는 건, 심층상어들의 출몰이지요

너울성파도가 일어나면 바다는 공포의 수렁으로 변했어요

수면 아래 엎드려 있는 동안 내 안의 묘지, 휘파람새와 함박눈이 찾아와도 몰랐지요, 나는 상어의 등에 날카로운 작살을 꽂았어요

무덤을 열었어요, 상처가 눈을 떴어요, 그래요 짓눌린 기억을 놓아주었어요, 잠에서 깨어난 흰눈썹황금새가 보이나요, 날개 움직여봐요

바랭이 수풀에서 비자나무 언덕으로, 홀가분하게 길을 가는 행자처럼, 하늘색 모시바람을 타고 무하유無何有* 숲으로 날아가 봐요

*샤트바: 갈수록 영적이고 내적인 것으로 되는 수준.

*무하유: 어떠한 인위도 없는 자연 그대로의 세계.

⌜흰눈썹황금새⌟전문

 

 

 

이미산: 위 시를 읽으면서 선생님의 정서적 바탕이 궁금해졌습니다. 이 예쁜 새를 시의 집으로 초대한 이유랄까요. 새를 빌어 내면을 드러내는 과정에 어떤 의도가 숨어있는지요. 한 편의 시 속엔 알게 모르게 시인의 무의식이 투영되어 있겠지요. 저의 경우 삶의 골짜기를 지나오는 동안 ‘내 안엔 이러저러한 것이 똬리를 틀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짐작이 가설로 자리매김했다고 생각합니다만.

 

신명옥: ⌜흰눈썹황금새⌟를 쓸 때는 세월호 사건으로 나라가 침통한 때였어요. 게다가 저도 좋아하고 아끼는 친구를 잃었을 때였어요. 세상이 모두 우울에 빠진 것 같았지요. 그 고통을 시로 형상화 하고 싶었어요. 한동안 고민해서인지 사건에 대한 직접적인 언급을 벗어나, 무의식의 이미지와 상징으로 다가왔어요. 제 딴에는 고통에서 함께 빠져나가기를 기원하는 마음을 담았어요. 저는 이 시를 쓰고 깊은 어둠을 빠져나온 느낌이 들었어요. 한 편의 시를 쓰는 동안 그것을 견디는 힘이 생겼다고 할까요.

⌜흰눈썹황금새⌟라는 제목에서 흰눈썹이란 세월을 의미해요. 황금이란 오랜 고통 속에서 얻은 귀한 깨달음을 의미하고요. 늘 삶과 죽음이 일어나는 세상에서, 가능한 한 무거운 것들을 내려놓고 평온하게 지내는 것이 지혜롭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지난 시간을 들여다보며 위로하고 용서하고, 몸과 마음을 추슬러 다시 일어나기를 바라는 마음이었어요.

 

이미산: 그렇군요. 세월호를 떠올리면 우리는 여전히 괴롭습니다. 그리고 알 수 없는 부채의식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저도 회피만 하다가 얼마 전에 겨우 한 편을 완성해서 발표한 적이 있습니다만. 흰눈썹황금새의 흰눈썹이 의미하는 시간성, 이를테면 흰머리의 상징적 해석이 독특하네요. 세월호의 안타까운 죽음에 대한 하얀 리본도 되겠군요. 다음 시를 보겠습니다.

 

 

사랑을 가장 높은 곳에 둔다 말했네, 친구들이 비시대적이라고, 비현실적 몽상일 뿐이라고 설득했네, 슬프지만 시대를 인정했네

한 영혼 본 순간 사랑에 빠졌으나, 팔만 육천사백 시간 철저한 침묵, 감격을 숨긴 채 품고 사는 사람 보았네

상대가 존재하는 것으로 행복한 사랑이란, 자족自足의 차원, 뭐라 반박할 수 없었네, 신념이 담긴 눈을 보며 감동이 가슴을 통과했으므로, 진정한 사랑이란 신적인 믿음에 가까우므로

디오티마*는, 사랑이란 자신을 위해서 가장 좋은 것을 원하는 것이지요, 육체로나 심령으로나, 아름다운 것 속에서 잉태하는 것이에요, 우리의 본성이 그 속에서 예술을 낳고 싶은 것이랍니다, 영원히 사는 일이지요

사랑을 가장 높은 곳에 둔 자, 심령의 아름다움을 볼 수 있다지요, 美의 큰 바다로 나가 知를 배우고, 진리를 터득한다지요, 그때 눈뜬 본성의 아름다움이란, 그 자체 영원한, 변함없이 그대로인 것이라지요

좁은 곳에서 살았네, 다른 세계 알지 못했으므로, 나는 다시 떠나네, 보다 높은 전망前望을 위해, 한 발 한 발 등정 중이라네, 美 그 자체 영원한 것의 잉태를 향해

* 디오티마: 플라톤의 향연에 나오는 여자 예언자

⌜플라토닉러브⌟전문

 

 

 

이미산: ⌜플라토닉러브⌟라니요, 소녀 시절 이후로 오랜만에 들어보는 단어입니다. 가볍게 인용하는 플라토닉러브가 아니라 철학적인, 의미적으로 무겁고 깊은 존재 전반의 사랑에 대한 성찰인 듯합니다. 사랑이라는 말은 흔하지만 너무 큰 대상인 반면 그 속살에 대한 미세한 감각은 저마다 다르겠지요. 대부분 시인들이 사람 사이의 사랑을 다루는데 반해, 선생님은 인간과 신 혹은 절대자와의 관계의 통찰이 시집 전반에서 읽혀집니다. 인간과 인간의 관계를 넘어 형이상학의 관념에 몰두하는 이유라도 있는지요?

 

신명옥: 어머니 나이 마흔 다섯, 아버지의 나이 쉰둘에 저를 낳고 길러서인지 사랑이 각별했어요. 나이 들어서가며 저의 미래를 더욱 걱정 하셨어요. 밤마다 염주를 굴리며 천수경을 자장가처럼 읊어주셨지요. 어린 마음에 부모님의 사랑을 너무 높고 귀하게 생각했어요. 신의 사랑도 인간의 사랑을 통해서 인식할 수 있는 거란 생각이 들더군요. 신의 사랑을 어머니의 사랑과 비교했어요. 적어도 神인데 人間보다 좁은 생각은 아닐 거라 믿으면서요. 한 사람을 사랑하는 일이란 그를 전부 이해하고 받아들이고 자유롭게 해주는 일이라 생각해요. 그런 사랑을 하기에는 늘 제 자신이 모자랐어요. 또한 상대방에게 더 높은 차원을 바라기도 했지요. 꿈꾸었다고 할까요. 결혼하고 생활하면서 제가 얼마나 비현실적인지 알았지요. 하지만 가족들에게 가능하면 제 신념을 실천하려고 했어요. 물론 모든 것이 턱없이 부족한 상태에서 행해진 것이지만요. 어머니의 사랑 속에서 스스로를 귀하게 여길 줄 알고 자유롭게 살려고 노력했던 만큼, 가족들도 스스로를 사랑하고 자유를 찾아가며 자존감 높은 삶을 살기 바라는 마음이었지요.

시를 쓰는 일이란 삶을 사랑하는 일이라 생각해요. 사랑의 에너지가 없으면 시적 교감이 이루어지지 않으니까요. 예전에 존경하는 시인이 “시를 쓰려면 술을 마실 줄 알아야 한다”고 하셨어요. 저는 “시인이란 술을 마시지 않아도 취해있는 사람”이라고 답했어요. 꼭 술이 아니라도 “좋은 사람들을 만나는 것으로도, 살아있다는 의식만으로도 충분히 취할 수 있지 않은가요?”라고 대답하였지요.

어린 나이에 겪은 아버지의 죽음으로 살아있다는 것의 소중함을 뼈저리게 깨달았어요. 숨 쉬는 동안만 느낄 수 있잖아요. 번잡한 일에 마음을 빼앗기며 이 특별한 느낌을 잃고 살지만요. 욕망을 내려놓으려고 노력하지만 욕망이란 끊임없이 다시 일어나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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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산: 시를 쓰는 일이란 곧 삶을 사랑하는 일이란 말씀에 전적으로 동감합니다. 그런 맥락에서 시인은 보다 열정적으로 삶을 사랑하는 사람이겠지요. 神의 입장에서 무척 예뻐하리라 생각하니 기분이 좋아지네요. (ㅎㅎ)

 

 

새벽 거리 지날 때 서쪽 산 위에 가늘게 뜬 달이 보입니다. 서늘한 기운이 주위에 감돕 니다. 먼 능선에서 뻗어온 어둡고 푸른빛이 내 그림자를 따라옵니다.

태양이 떠올라도 캄캄하기만 합니다. 더듬어보아도 다음 세계로 가는 길이 보이지 않습 니다.

시간 흐를수록 숨이 막힙니다. 골목 걷다 막다른 곳에서 낮달과 마주칩니다. 사거리에 서 머뭇거릴 때 나타납니다. 달이 점점 커집니다. 악몽에서 깬 새벽. 어둠이 내 안에 기르 는 것들을 비춥니다.

평온을 찢고 들어와 우울을 키우는 코브라, 시간을 붉은 말에 태우고 채찍을 휘두르는 사자, 고요가 깃든 자리에 천개의 종을 흔드는 독수리.

보름달 떠오르자 괴물에 시달려 길 잃은 내가 보입니다. 나를 괴롭히는 음영들은 또 다 른 나의 모습, 돌아보지 않은 분신들입니다. 괴물들을 제자리 돌려보내고 마음자리 찾아 가라고 달빛이 다음 세계로 가는 길을 비추고 있습니다.

⌜달의 시그널⌟전문

 

 

이미산: 열심히 살수록 불안이 증가하는 것일까요? 아님 불안 때문에 우리는 더 열심히 사는 것일까요? 위 시도 불안과 두려움이 보입니다. ‘태양이 떠올라도 캄캄’한 내면이며 ‘더듬어보아도 다음 세계로 가는 길이 보이지 않’는다는 진술에서, ‘보름달 떠오르자 괴물에 시달려 길 잃은 내가 보이’는 진술에서, ‘나를 괴롭히는 음영들은 또 다른 나의 모습, 돌아보지 않은 분신들’이라는 고백에서, 종합해 보면 굉장히 그로데스크한 풍경인데요. 이 또한 시인의 무의식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어린 시절 읽은 동화나 어른이 되어서도 느닷없이 엄습하는 불길함을 피할 수가 없죠. 선생님이나 저나 나이를 먹었다고 할 만큼 살았는데요. 여전히 불안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신명옥: 이미산 시인께서 고른 세편의 시들이 독특하네요. 보통 주목하지 않는 시들이에요. 하지만 제 삶의 힘든 순간들이 들어있지요.

늘 삶에는 불안의 요소가 있지요. 친구를 만나고, 영화를 보고, 여행을 가고, 놀이를 하는 동안에는 잊고 있지만 근원적으로 언제나 내 안에 있지요. 유한한 삶이 내포하는 생, 노, 병, 사부터 감당해야하는 생활과 수많은 인간관계에서 맞닥뜨리는 성격차이들. 제가 시를 쓰는 일은 그것을 고민하는 방식이기도 해요. 마음을 다스리기 위해서, 깨어 있기 위해서, 끊임없이 無心의 문을 두드리게 되지요.

⌜달의 시그널⌟은 새로운 친구와 소통이 안 되어 괴로울 때 쓴 시에요. 오해와 편견이 끼어들어 온갖 투사를 하며 관계를 어렵게 만들 때였어요. 저는 고통을 들여다보며 우울한 생각에서 벗어나는 방법을 찾고 있었지요. 새벽에 먼 산등성이에 걸린 낮달이 보였어요. 마치 저를 염려하고 위로하고 걱정하는 눈 같았어요. 낮에도 어둠 속을 헤매는 제가 미안해졌어요. 고통을 적극적으로 벗어나기로 했어요. 밤이 되자 제 안에 날뛰는 괴물들이 보이더군요. 그 실체란 다름 아닌 제 마음의 작용이었어요. 밤하늘을 보니 보름달이 환하게 떠 있었어요. 마치 이곳을 벗어나 찾아가야할 다음 단계의 길을 안내해 주는 것 같았어요.

 

이미산: 결국 불안도 내 마음의 일이군요. 삶이란 자신을 다스리는 과정이란 사실에 숙연해집니다. 진부한 질문 하겠습니다. 행복하십니까? 시인으로서의 행복과 자연인으로서의 행복은 다르겠지만요. 우리는 행복하기 위해 시인이 되었지요. 저는 손주를 돌보는 상황에서 육체는 힘들지만 새로운 행복을 느끼고 있습니다. 그리고 시 작업에 꼭 불리하다고는 생각지 않습니다. 오래 전 잡지에서 박완서 작가도 손주를 돌보며 글을 썼다고 읽은 기억이 나는데요.

 

신명옥: ‘행복이란 自足 속에 있다’고한 아리스토텔레스의 말이 생각나네요. 행복이란 고정 된 것이 아니라 유동적인 것 같아요. 순간순간 행복하기도 하고 그것을 잃고 헤매기도 하니까요. 시의 길이 어렵고 힘들지만 시인으로서 사는 일은 행복해요. 이미 많은 욕망을 내려놓고 이 길을 선택했으니까요.

읽어야 할 것은 많고, 하고 싶은 것들도 많고 나이는 들어가는데 손주를 돌보기 위해 시간을 내는 것이 힘든 점도 있지요. 또한 건강을 다스릴 시간도 필요하니까요. 다행히 딸도 제 입장을 아니까 서로 조율하면서 돌봐주었어요. 그 시간이 더없이 즐겁고 황홀한 행복을 주더군요. 둘째가 돌이 되어 어린이집에 가게 되었어요.

여자시인의 입장을 얘기하니까 버지니아 울프와 허난설헌의 불행한 삶이 생각나네요. 그들이 감당하기 힘들었던 지난 시대의 관습과 어두운 편견에 비하면 오늘날은 대단히 발전한 시대지요. 그들이 요즘 태어났다면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떤 시를 쓸까 궁금해져요. 확실한 것은 그들이 시를 맘껏 자유롭게 썼을 것 같아요.

첫 시집을 냈으니 이제 두 번째 시집을 향해 출발한 셈이네요. 보다 새로운 시를 써보고 싶지만 변화는 한 순간에 오는 것이 아니겠지요. 보다 나은 변화를 위하여 천천히 그리고 꾸준히 노력하려고 합니다.

 

이미산: 그들은 누구보다 행복하기 위해 몸부림치다 불행한 삶이 되고 말았지요. 생은 한 치 앞을 알 수 없고 그러나 살아있는 존재는 행복을 꿈꿀 수밖에 없습니다. 다시 우리는 머리를 쥐어짜며 시를 쓸 수밖에 없구요. (ㅎㅎ) 자, 시간이 다 되었군요. 어쭙잖은 질문에 성실하게 답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후기 : 처음 인터뷰어가 되었다. 별난 질문으로 튀는 답을 유도하고 싶었다. 그러나 우리는 너무 진지했다. 돌아보면 나는 모범적인 생활에 길들여져서 내가 생각하는 가치와 세상에서 요구하는 가치의 거리를 여전히 좁히지 못한다는 사실에 실망했다. 아니다. 몇 개의 질문은 조금 재미있을 뻔도 했다. 몇 개의 질문이 각을 세운 채 대립하다 서로의 동의하에 속절없이 지워졌다는 사실을 밝힌다. 그 질문이 빛을 보았다고 한들 우리의 견고한 담장을 넘을 수 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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