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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표시

비무장지대 / 이미산

비무장지대

                   이미산

 

 

길목에 앉아

그가 손을 내민다, 내놓으시지

가방 속에 숨긴 너를

 

가방을 내려놓고

알록달록한 속옷까지 벗어 바친다

낯설게 내려앉는 햇살, 언제나 분주한

일정표에 거품이 보글거린다

 

그가 속삭인다, 꺼내놓으시지

움켜쥔 지갑을, 지폐가 살찌운 고독한 영혼을

 

나는 달아난다

가쁜 숨소리에 발자국 움푹움푹 파인다

나보다 먼저 내 앞에 버티고 서있는

그는 얼마나 고집 센 오늘인지

아늑한 방 하나 어디쯤서 나를 기다리는지

 

그의 손을 잡는다

그의 눈동자 속으로 건너간다

실패에 감긴 이정표를 풀어

이불을 짜고 있는 내가 보인다

 

                      한국시인협회 2014년 사화집 수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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