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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표시

초승낮달/ 이미산

 

 

초승 낮달

              이미산

 

 

 

 

흉터에 머무는 바람입니다

사라져간 꽃들의 무덤입니다

내 몸에 남아있을 당신입니다

 

 

작은 입구 작은 내면 작은 고요

모든 작은 것들의 뿌리입니다

인기척에 마음 한 귀퉁이 흔들리며

마주보는 지점입니다

 

 

한낮의 적요로 번지다 감기지 않는 눈동자로 떠돌다

어느 정수리에 모여 서서히 분명해지는

생각하고 골똘해지는 마음의 한켠에서

잠시 뒹굴다 홀연히 사라지는

그래서 조금 미안하고 조금씩 그리워하는

마당을 쓸고 마루를 닦고 허공의 한 지점을 가늠해보는

아껴둔 흔적입니다

 

 

몽당빗자루처럼 앉아 졸고 있는 노파의

몸속을 통과하는 저 외롭고 고단한 길이

너무 길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폐업의 자세로 남겨진다 해도

출처의 흔적들 훨훨 날아다닐 테니

너무 야위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초승을 당겨오는 검지가 구부려졌다 펴지는 사이

어느 조팝나무 활짝 핀 눈알들 쏟아내고 있겠죠

나를 기다리며 봄날이 오래 서 있었으면 좋겠어요

 

                                       격월간 <시인 플러스> 2013년 7-8월호 수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