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래비누가 닳아지듯이
이미산
밤새 끌고 온 얼굴이 아침햇살에 스르르
사라지듯이
어느 결혼식에서 듣는 주례사, 빨래비누가
닳아지듯이 사랑은
닳아지듯이
젖은 빨래를 비빌 때
태어나는 발자국과 떠다니는 독백과 사라지는 거품들
빛살에 펄럭이는 구멍 숭숭한 거처와
사라진 수많은 이름과 맴도는 얼굴과
평생 비벼낸 거품들 아우성치며 달려오듯이
손등에 닿아 물방울처럼 투명해지듯이 통증처럼
납작한 배경으로 텅 빈 눈동자로 픽픽 쓰러지듯이
멈추지 않는 쉼표 되어 떠도는 굽은 등의 행렬
눈길 위에 찍고 온 발자국들 다시 내리는 눈발에
천천히 덮이듯이
허리 굽은 길목에 우수수 떨어지는
꽃잎 꽃잎들
계간 <애지>. 2013년 여름호 수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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