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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표시

빨간 장화를 신고 / 이미산

 

 

 

 

    빨간 장화를 신고

                                                이미산

 

 

 

 

 

 

  빨간 장화를 신고 없는 당신 기다린다

  당신은 불빛 찬란한 저 빌딩 속 어른거리는 그림자

 

 

  그림자 속에 당신의 뼈를 세우고 거친 숨소리 새겨넣는다.

  당신은 내겐 없는 용기, 나는 뜨겁게 흐르는 권태, 우리는

  붉은 신호등을 건넌다. 발자국마다 장미꽃이 피어난다

 

 

  사방엔 모르는 발자국들의 뒤엉킨 불빛들

  우린 그것을 꼭꼭 밟아준다 활짝활짝 피어나는 금기,

  장미라는 이름의 다정한 가시들,

  가시같은 이빨 드러내며 당신은 내게 입을 맞춘다

  빨간 장화 속에서 나의 주인이 된다

 

 

  그리하여 언제 어디쯤에서였을까,

  장화의 행방조차 아득한 저녁

 

 

  나와 손잡은 이쪽이 아닌, 어떤 낯선 구멍을 통과 중인

  숨소리 가르렁거리는 당신

  내가 장미, 하고 아프게 부르면 밤고양이 기지개켜듯

  당신 귀 활짝 열릴까 그곳에서 우리가 잃어버린

  빨간 장화라도 만날까

 

 

  하릴없이 없는 당신 기다리는 저녁

  굉음을 울리며 지나가는 오토바이 사내의

  눈빛이 출렁거렸다 공중에 활짝활짝 피어나는 장미꽃,

  나는 아슬아슬 키를 세워 가시를 만든다

 

                                           계간 <문예연구>. 2011년 여름호 수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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