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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표시

코코코 / 이미산

 

 

 

    코코코

                                             이미산

 

 

 

 

 

  코코코, 하며 여물지 않은 검지로 코를 만졌지

  어서 자라라, 어른들은 나를 코코코라 불렀지

 

 

  그 코의 힘으로 나도 훌쩍 나무도 훌쩍

  이제 손가락 없이도 내 코는 극지의 바람 불러내지

  정성껏 코를 어루만져도 더는 클 수 없는 키

  코코코 대신 슬그머니 흠흠,

 

 

  따라해 봐 흠흠,

  코가 즐거워질 때까지 어깨의 좌우가 평평해질 때까지

  적당히 멀고 적당히 가려진 관계의 버스가 도착할 때까지

  당신과 나 사이 오랜 매듭이 가랑비 울음 터트릴 때까지

  손톱만한 행운이 불경한 거울을 빠져나올 때까지

 

 

  바람아 황금빛 눈물 듬뿍 뿌려 처마 끝에 누운 저 그림자 좀 일으켜 세워

나의 매끄러운 손가락들 매혹의 애벌레들 안개의 내면은 단단한 허공일까

밤새 뒤척였으므로 이제 너를 안을 수 있을 거야 인사 없이 사라진 안경이

훔쳐간 진지한 헛기침

 

 

  가볍게 흠흠,

  흥얼거리는 연필 흥얼거리는 숟가락

  누군가의 귀가 간지럽다면 그건 쑥쑥 자란 내 코의 자부심

  흠흠으로 풍성해진 코의 성실한 숨바꼭질

 

 

  이만한 위로가 어디 있냐며

  늙은 나무는 다시 봄을 향해 어린 검지 매달고 코코코,

  평생 단 한 번의 일탈처럼 내 코는 흑백 속으로 가라앉으며

  흠흠,

 

 

                                                                        계간 <문예연구> 2011년 여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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