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 작가 오르한 파묵, 좌: 번역가 이난아
설날 연휴 마지막 날에 잡은 책,
재작년에 사놓고 차일피일하다가 이번에 독파했다. 두권 읽는데 4일.
역시... 노벨문학상 받을 만한 작품이라는 생각.
세밀화, 라는 그림의 세계를 소재로 인간의 욕망과 사랑,
지리학적 요인으로 파생되는 세계 속의 터키라는 나라의 특별함까지.
자료조사의 치밀함과 연관된 무한상상의 깊이.
예술하는 인간은 결국 '나'를 드러내는 욕망의 표현,
'스타일'이라는 용어가 자주 등장하는데, 이 단어가 주는 매력에 함몰,
동 제목의 詩에 매달려보기로 작정함.
우선 등장인물을 화자 별로 제목을 잡은 구성이 눈길을 끈다.
각 등장인물이 자신의 얘기를 해나가는 방식, 겹치는 얘기가 있기는 하나
같은 사건을 인물에 따라 다르게 해석하는 장점을 독자에게 전해준다.
결국, 캐릭터의 특징을 잡아주는 역할을 하면서도 기존의 서사체계를 살짝
비껴난 그 신선함으로 낯선 긴장을 연속시키는 기능을 한다 할까?
그리고 중간중간, 독자와의 소통을 꾀하는 문장을 넣어 마치
등장인물의 이야기를 독자가 바로 옆에서 듣고 있는 호과를 불러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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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으로 예술적인 천재와 대가적 노련함을 가진다는 것은 단지
아무도 다다를 수 없는 경지의 그림을 그리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마침내는
그 작품에 화가 자신의 정체를 드러내는 그 어떤 흔적을 남기지 않는
것이기 때문이다." --- 1권, 42쪽
"나는 내 불운한 희생양이 죽음의 공포 속에서 발버둥치고 있을 때,
아주 평범하고 거친 스타일로 죽였다. 그 살인 행위에서 혹시 나를
드러낼 어떤 개인적 흔적이 남아있지 않을까 염려되어 한밤 중에
이곳 화재 터를 찾을때처럼 점점 더 스타일의 문제가 머릿속에서 맴돈다.
그리고 생각할수록 스타일이라는 것은 단지 개인적인 흔적을 남기는
오류라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 1권, 45쪽
"시라즈와 헤라트화파의 옛장인들은 신이 원하고 보았던 진짜 말을
그리리면 50년 동안 쉬지 않고 말을 그려아한다고 했네. 진정한 장인
이라면 50년 동안 말을 그리다 장님이 되고, 결국은 그의 손이 그가 그리던
말그림을 외워 그리지." --- 1권, 45쪽
"불완전함이야말로 우리가 스타일이라고 부르는 것의 근원" --- 1권, 119쪽
"바보들은 언제나 자신의 사랑이 촌각을 다투는 시급한 일이라도 되는 듯
성급하게 마음을 드러내는 바람에 상대의 손에 칼자루를 쥐어주지요. 영리한
연인은 결코 서둘러 반응을 보이지 않는 법입니다. 결론은, 서두르면 사랑의
열매가 늦게 맺는다는 거지요." ---1권, 47쪽
"옛날 학자들의 책을 보면 영혼이 머무는 장소는 네 군데다.
첫째는 어머니의 자궁, 둘째는 세상, 셋째는 지금 내가 있는 이곳 베르자흐, 그리고
네 번째가 심파늬 날 이후의 천국 혹은 지옥.
베르자흐(천국과 지옥사이의 세계, 연옥.)에서는 과거와 현재가 동시에 보이고
공간의 경계도 없다. 그러나 삶이 꽉 끼는 셔츠와 같다는 것은 오직 시간과 공간의
감옥에서 벗ㅇ나야만 깨달을 수 있다. 죽은 자들의 왕국에서 진정한 행복은 육신이
없는 영혼이라면, 산 자들의 영토에서 가장 큰 행복은 영혼 없는 육신이라는 사실은
그 누구도 죽은 다음이 아니면 알 수가 없다. 그래서 난 나의 근사한 장례식이 치러
지는 동안 집에서 날 위해 쓸데없이 울고 있는 내 딸 셰큐레를 가슴 아프게 바라
보면서, 고매한 신을 향해 기도했다. 우리에게 천국에서는 육신 없는 영혼을, 그리고
이승에서는 영혼 없는 육신을 베풀어주십시고." --- 2권, 53쪽
"화가가 그린 소재와 화가 자신이 비슷할 거라는 생각은 나를 포함한 장인들을
전혀 모르는 자들의 생각이네. 우리를 드러내주는 것은 다른 사람들이 우리에게
그리ㅗ록 요구한 소재가 아닐세. 그리고 사실 그들은 늘 같은 것을 원하지. 화가의
개성은 소재에 접근하는 과정에서 그림에 반영된 하가의 숨겨진 감수성을 통
해서 드러나네. 그림에서 뿜어져 나오는 듯한 빛, 인물과 말과 나무들의 구성
에서 느껴지는, 손에 잡힐 듯 생생한 머뭇거림 또는 분노, 하늘로 뻗어 올라가는
사이프러스 나무로 표현되는 바람과 슬픔, 결국은 스스로를 장님으로 만들 열정으로
벽의 타일에 그림 장식을 하는 과정에서 드러나는 화가의 운명과 인고의 자세
...... 이런 것들이 우리를 말해 주는 숨겨진 표식들이라네. 어떤 말의 분노와 질주
를 그릴 때 세밀화가는 자신의 분노와 질주를 그리지 않는다네. 가장 완벽한
말 그림을 그리려고 노력하면서 세상의 풍성함과 그것을 창조한 이에 대한 사랑,
삶에 대한 사랑의 빛깔들을 보여줄 뿐이지." --- 2권, 10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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