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녀가는 새벽 비처럼
이미산
후두둑, 잠결에 듣는 빗방울 소리
훌쩍, 새벽담장을 넘어오는 발자국들
내 귓속으로 걸어오는,
이것은 소설 속 한 풍경인지도 모른다 비릿한 냄새와 구겨진 옷가지와 낡은 가방과
그리고 여기 벽지의 꽃잎들 귀 활짝 열린,
나는 눈을 꼭 감아 가볍게 뒤척이고
먼 길 걸어왔거나
먼 길 돌아나가는
숨 쉬는 동안에 반복되는 어떤 현상 같은 것,
이것은 소설이 뱉어낸 흔한 질문인지도 모른다 이상을 찾아 집을 떠난 사내가 오래
길 위를 떠돌다 떠돌다 발자국과 발자국과 발가벗은 몸뚱이 소설 밖으로 뛰쳐나올 때
파르티잔의 행로는 어떻게 되나
어디로 가나 저 발자국
나는 눈을 꼭 감고 귀를 한껏 부풀려
발자국 불러들인다 눈꺼풀로 알뜰히 쓰다듬는다 아장아장,
멈추었나 싶으면 걸어가고 사라졌나 하면
거기 서있는
귓속에 걸어가는 발자국
눈꺼풀 꽁꽁 여며 밀어낸다 고독한 냄새 같은 그림자 하나 훌쩍,
담장을 넘어간다 한 점으로 남겨진 자리에 다시
발자국 넘어오고 넘어가고
어디로 가나 저 발자국들
나는 눈을 꼭 감고
간절히
계간 <시산맥>, 2011년 봄호 수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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