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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표시

복사꽃 필 때

 

복사꽃 필 때

                    이미산

 

 

 

떠도는 바람의 귀엣말,

참았던 숨을 토해내듯 서서히

번져가는 분홍빛

 

질긴 이름 하나 하늘가로 밀려가는 동안에도

어린 말들은 분홍빛 입술로 태어나고

 

나를 기억하는 어떤 숨소리 하나 도착하였으므로

들판이 다시 팽팽해졌다, 다시 달아오른 내가

절뚝이며 지평선 끝까지 달려가면, 어딘가에 남아있을

내 입술 다 닳아

너를 관통했던 기억마저 지워져

낡은 서류를 넘기는 굳은살처럼

이 계절이 무심해질까

 

입춘 지나 경칩, 다시 궁금해지는 세상 쪽으로

아물지 않은 뼈가 또 열린다

 

바람소리뿐인 머릿속

꽃이 진 줄도 모르는 나는

분홍을 덮어쓰고

너를 덮어쓰고

 

 

          계간 <시와 지역>, 2010, 겨울호 발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