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리창과 빗방울
이미산
나무는 구름처럼 공중에 떠있다 지붕은 단조로운
계절을 벗고 배회하는 풍선처럼 떠올랐다
간판이 지워진 길속에 범람하는 고요,
그 위로 흘러드는 어떤 걸음걸이,
오른발과 왼발이 붙은 채 연등처럼 미끄러진다
신호등은 껌뻑이며 길 잃은 것들 부른다
잠이 든 배경에서 푸드득, 푸드득,
새의 비상처럼 자동차가 날아오른다
퉁퉁 불어터진 꿈의 살갗은 축축하고
꿈 속 풍경은 점점 희미해진다
그 많던 창문, 골목, 빌딩, 그 많던
이 ․ 목 ․ 구 ․ 비, 어디로 갔을까
어디에 숨었을까
사물들 새로운 이름표를 달기 시작한다
하나의 몸에 서너 개의 생이 기어오른다, 매달린다,
툭 툭 미끄러진다, 어디쯤에 나를
내려놓을까 어디쯤에서 나의 눈물은
달콤해질까
꿈의 남겨진 행로가 궁금한데
강물은 돌아앉으며 거대한 주머니가 된다
신호등 속으로 서서히 핏발이 고인다
거뭇한 반점을 물고 드러누운 회색 배경이
이 모든 것들 빨아들인다
계간 『시인시각』, 2010년 가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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