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걷는다
이미산
오늘은 어제보다 더 춥거나 덜 춥다
사내가 허연 입김을 쏟으며 물이 흐르는 빨래를 넌다
빨래가 다 마르기 전 새로운 빨래가 시작되겠지
모퉁이를 돌 때 낯익은 지점에
발을 집중했다 빗나갔다 어제처럼
늘 이런 식이다
빨래는 무슨 생각을 할까
날마다 새로워지는? 빨래의 굴레를 벗어나는?
제 자리로 정확히 되돌아오는?
맹세의 순간에도 언뜻 안녕을 떠올렸다
그의 품에 안겨 그 아닌 그를 생각했다
비아그라를 깊숙이 숨긴 그들은 어떤 부활을 원할까
빨래처럼 쌓이는 발자국 위의 발자국
누군가 뱉은 침이 별처럼 반짝 빛났다
버려진 신발 한 짝이 뜨거운 시간을 뒤척인다
보도블록이 빠져 움푹 팬 공간, 이것은
길일까 빨래일까 발자국일까
빨래가 잠든 동안 사내는 분주히
새로운 발자국을 익힌다 매일매일
새로운 빨래가 되어 눕는다
계간 <애지> 2011년 겨울호 수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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