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표시

나무부처

기호의 순수 2007. 6. 7. 18:55
 



      나무부처

                      '목조미륵보살반가사유상'에 부쳐

                                                                 이미산



  나를 부처라 부르지 마라

  나는 부처를 모른다

  빛나는 가문의 족쇄를 차고 삶도 아닌 죽음도 아닌

  종교가 되어 미라가 되어

  누군가 새겨 넣은 자비 가공의 미소

  천 년 넘도록 푸른 피 흘리고 있다

  날마다 중생들 몰려오지만

  내 생각의 뿌리를 바라보지 못한다

  내 안에서 꿈틀거리는 솔향기

  엉덩이에 남겨진 옹이자국

  나뭇가지 팔뚝의 근질거림을 모른다

  내부는 썩지 않는 나무의 살 나무의 뼈

  나무의 기억들로 술렁거린다

  백로 떼 내 품에서 사랑하며 새끼를 키웠다

  벌레들 내 살 비듬 먹고 다산의 꿈을 꾸었다

  겨울이면 사방천지 폭설의 순박한 구애로 뒤덮이는 곳

  나 돌아갈 곳은 소백산 등성이 소나무 숲이니

  꼼짝없이 앉아 천년을 사유하고 또 사유해도

  나는 끝내 부처가 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