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표시

입춘/이미산

기호의 순수 2023. 2. 26. 01:07

  입춘

        이미산

 

 

 

  먼 길 오는 동안 가느다란 빛으로 갈라진

  손가락 열한 개

  손가락 삼천삼백 개

  손가락 칠천칠백만 개

 

  오로라 지나 오존층 지나

  베란다에 도착한다 잡히는 대로 어여쁘게 문지르고

  어여쁘게 두드리는

  반짝반짝 우주의 실핏줄

 

  사랑초가 혀를 쏙 내밀며 들려주려는 이야기

 

  먼지를 쓴 채 내 지하실에 잠들어있는, 이를테면

  업힌 나를 깍지 낀 손으로 받치며 들려주던 노래

  등속의 울림과 번지는 목소리의 신비한 화음 따라

  아주 먼 곳으로 나를 이끌던 그 자장가

  그날처럼 내 이마 쓸어내리는 오늘의 인사는

  이제 어른이 되었구나

 

  내가 다시 잠들 때까지 멈추지 않는 부드럽고 다정하고 끈질긴

 

  마침내 손의 나라에 도착한 나는

  온몸에 황금색 꽃이 피어난 초여름의 원피스 깨금발로 거닐며 아무나 붙잡고

  차 한 잔 하실래요?

 

  내가 즐거울수록 더 밝고 가늘어지는 손가락들

  가끔은 빙그레 웃는 태양을 바라보며

  딸꾹

  딸꾹

                                  웹진<시인광장> 2023년 3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