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표시
칼의 서정 / 이미산
기호의 순수
2023. 2. 3. 18:05
칼의 서정
이미산
칼 하나가
휘두르는 칼자루로 진화했지
어쩔 수 없었어요,
신화를 빠져나온 칼들이 영웅처럼 활보했고
소년들은 생쥐 눈동자로 칼맛을 들락거렸지
휘둘러라,
허공병정들이 기묘한 표정을 지었고
존재하지 않는 질서가 디스토피아의 가설처럼 지구로 몰려왔지
어느 지붕 아래
엄마를 흉내내다 칼에 베인 아이는 잠이 들었고
엄마는 영원히 아이의 손가락 호호 불고
말라붙은 피는 다시 꽃이 되기 위해 꿈속으로 스며들 때
사랑마저 거짓이었니?
더러운 기분이 한 손엔 칼자루 한 손엔 정의의 피켓
공터가 사정없이 흔들렸고
동네 개들이 사력을 다해 짖었고
언덕 하나만 넘으면 비정한 행성이라 불리는 그들만의 샹그릴라가
나타날 것 같은
새벽하늘
꿈속을 빠져나오는 붉은 꽃밭
아이를 반으로 갈라 나눠 가져라, 흐느낌을 기억하는
은하수
웹진<같이가는기분> 2023년 봄호